“국가를 상징할 수 있는 (K-팝) 공연장이 필요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말 취임 1주년 국정 성과를 보고받는 국무회의에서 주문한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5만석 전후의 대규모 공연장이 몇 개는 필요할 것 같다”라며 “(2만∼3만석 규모는) 좀 작다. 국가상징 공연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방정부 새 구성을 완료한 후 곧바로 입지를 선정하겠다고 답했다. 정부 역시 현 상황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공연장 대관 전쟁…한국은 없는데 일본은 넘치네
주말마다 잠실과 올림픽공원 일대는 K-팝 팬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외 활동이 가능한 기간에는 각종 음악 페스티벌이 지방까지 확장되어 개최된다. 공연·축제가 올스톱됐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현장 경험에 대한 갈증이 커지면서 공연 수요도 함께 늘었다.
K-팝의 글로벌 수요가 늘면서 인기 가수들에겐 앨범 발매 후 해외 투어가 필수가 됐다. 그 출발점은 늘 국내 공연이지만 폭발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티스트들의 월드투어 규모가 확대되고 공연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이를 뒷받침할 공연장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옆 나라 일본의 상황은 다르다. 지난 4월 마지막 주 도쿄 수도권 주요 공연장에 약 40만명의 K-팝 팬이 모였다. 동방신기와 트와이스, 에스파가 나란히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 국립경기장, 도쿄돔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데이식스도 같은 기간 도쿄 게이오 아레나 투어를 개최했다. K-팝의 심장인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광경이었다.
일본은 규모별로 7만석급 스타디움부터 4만~5만석급 돔 5개, 1만석급 아레나까지 객석 규모별 공연 인프라가 촘촘하게 갖춰져 있다. 반면 K-팝의 본고장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아티스트의 관객 동원력은 세계적인 수준임에도 공연장 확보는 더디다. 최대 규모의 팬덤을 보유한 방탄소년단은 지난 4월 고양과 최근 부산에서 총 24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데이식스, 스트레이 키즈, 블랙핑크, 빅뱅, NCT 등 페노메논 합작법인에 동참한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들의 관객 동원력도 역대 최고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한국판 코첼라를 꿈꾼다면 지금 마주한 현실과는 차원이 다른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K-팝 전성기 타고 낙수효과 톡톡
K-팝 산업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공연업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공연을 보기 위해 방한한 외국인들은 일반 관광객보다 긴 기간 머물며 숙박·식음료 등 소비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관광·유통 등 다양한 업계가 덩달아 낙수효과를 누리는 구조다. 지방자치단체가 K-팝 공연장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이유다.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은 1894만명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한국을 여행지로 결정하는 외국인들에게 K-팝은 주요한 동인이다. 특히 한한령으로 현지 콘서트 개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내 K-팝 공연장을 찾는 중국 관광객 비중이 적지 않다.
방탄소년단의 사례를 보면 그 파급력이 바로 체감된다. 지난 3월 군 복무를 마치고 완전체로 돌아온 멤버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컴백 공연을 열었고, 4월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월드투어 첫 공연을 개최했다. 3월 공연을 위해 방한한 외국인은 평균 8.7일을 머물며 1인당 353만원을 소비했다. 1분기 외래관광객 평균 체류일수(6.1일)보다 2.6일 길고 평균 지출액(245만원)보다 108만원 많은 수치다. 4월 고양 공연 외국인 관람객의 체류일은 평균 7.4일, 소비액은 291만원 수준이었다. 한국관광공사가 고양 공연 사흘간 공연장 일대 통신·카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 방문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35배, 소비액은 38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K-팝 공연 한 번이 일대 상권 전체를 흔드는 경제 이벤트가 된 셈이다.
◆거창한 미래, 더딘 현실
이 같은 경제적 파급력이 수치로 입증되자 정부는 본격적인 공연장 확충에 나섰다. 문체부는 5만석 규모와 2∼3만석 규모로 나눠 확충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축뿐 아니라 기존 시설 리모델링도 검토 대상이다. 전국 여러 지자체가 건립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문체부는 실제 수요를 고려해 신중하게 입지를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5만석 규모 대형 공연형 아레나를 수도권에 새로 조성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입지를 선정해 2031년 착공, 2034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속도다. 수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수준의 사업이 아니라 용지 확보부터 예산 조달, 인허가 절차, 교통·주차 대책, 주민 수용성 검토 등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대규모 용지 확보와 광역 교통망 구축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현재 논의되는 신규 공연장 건립 계획이 추진되더라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페노메논 개최를 1년여 앞둔 현실에서 그 공백을 메울 단기 대안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문체부는 기존 체육시설 활용을 병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신규 공연장 완공까지는 8년 이상 남았다. K-팝의 황금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2034년 완공을 목표로 한 공연장이 과연 K-팝의 전성기를 담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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