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대한민국 공연 시장이지만 정작 현장의 아티스트들은 무대 연출이 아닌 공연장 대관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공연 좌우하는 대관 전쟁
가수 김준수는 최근 KSPO돔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도 대관이 돼야 할 수 있다. 대관만 해도 공연의 70%는 성공일 정도”라고 말했다. 최대 1만5000석을 수용하는 KSPO돔은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장소다. 그만큼 대관 경쟁도 치열하다. 20여년간 연예계에서 활동해 온 김준수는 “요즘 인기 아이돌 그룹이 너무 많아 나 혼자 (경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며 “쟁쟁한 아이돌도 매달 20팀씩 대관 신청을 한다. 선정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6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공연시장 관람권 총판매액은 1조7327억원으로 전년(1조4589억원) 대비 18.8% 증가했다. 공연 건수와 회차, 예매 수가 모두 늘며 국내 공연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대중음악 분야 관람권 판매액은 4934억원으로 전년(4381억원)보다 12.6% 늘며 여전히 시장의 핵심 장르 자리를 지켰다. K-팝 아티스트들의 국내외 투어와 대형 콘서트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대중음악 공연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확대된 K-팝 공연 수요가 지속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대규모 관객을 안정적으로 수용할 K-팝 전문 공연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적 수준으로 커진 K-팝 산업 규모에 걸맞은 공연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자연히 커지고 있다.
공연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올림픽공원 내 KSPO돔, 핸드볼경기장, 올림픽홀 등을 대관하려면 행사 적정성, 흥행성, 안전관리 등을 놓고 주최 측이 서로 경쟁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을 통한 경합심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가요계에 따르면 길게는 1년 전부터 대관을 신청한다. 컴백 후 국내외 콘서트 투어를 도는 패턴이 정형화되면서, 대관 일정에 맞춰 컴백 시점을 조정해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몰리거나 없거나…韓 공연장의 민낯
5만석 규모의 잠실 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고양종합운동장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밖에 K-팝 공연의 주요 무대로는 KSPO돔(1만5000석), 고척스카이돔(1만8000석), 인스파이어 아레나(1만2000석) 등이 꼽힌다. 하지만 KSPO돔은 대관 경쟁이 치열하고 고척돔은 프로야구 일정이 우선이다.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인천 영종도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진다. 야외 공연장인 고양종합운동장이나 인천아시아드경기장은 우천이나 혹서·혹한기엔 공연 개최 자체가 어렵다. 잠실 주경기장은 리모델링을 마친 뒤에도 5년간 야구장으로 쓰일 예정이다.
이처럼 대안 시설마다 한계가 뚜렷한 가운데 수년 내 K-팝 공연 수요를 떠안을 새 무대는 서울 도봉구 창동의 서울아레나 정도가 유일하다. 내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하는 서울아레나는 약 2만석 규모의 국내 최초 K-팝 전문 아레나다.
대관난은 비단 인기 아이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게는 수천석, 많게는 수만석 규모의 관객을 채우는 이들이 있지만, 그보다 작은 팬덤을 가진 가수들에게도 팬과의 만남은 필요하다. 5000∼1만석 규모의 아레나급 공연장은 물론, 그 이하인 2000석 안팎의 중소형 공연장도 가뭄이다. 서울 시내 1000석 이상 대극장은 중구 충무아트센터(1200여석), 마포구 마포아트센터(1000여석) 정도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부분 뮤지컬·클래식 공연을 목적으로 설계돼, 고출력 음향이 필수인 K-팝 공연을 소화하기엔 한계가 있다. 공공 문화예술기관 특성상 지역 주민을 위한 공익적 대관이 우선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결국 대중음악 공연에 최적화된 2000∼5000석 규모의 중소형 전용 공연장이 전무하다는 점도 K-팝 산업이 안은 숙제다. 지방으로 가면 사정은 더 심각하다. 공연을 경험할 인프라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규모의 다양성을 고려한 공연장 건립이 요구되는 이유다. 한 중소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인기 아이돌의 치열한 공연장 대관 경쟁이 이슈화됐지만 중소기획사 아이돌 역시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관객 규모에 맞는 공연장을 대관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며 “관객의 교통 편의와 시설 수준 등을 고려하면 선택지가 몇 곳 남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수도권과 지방의 사정은 또 다르다.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중음악 전용 공연장을 신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완공 후 유지·보수 비용과 가동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예산 낭비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지방에서는 기존 공공 체육시설을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수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정부도 현실적인 단기 대응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120억원을 투입해 ‘체육·다목적 시설 대중음악 공연 환경 개선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6개 권역별로 1000석 이상 공공시설 1곳씩을 선정해 시설당 최대 20억원을 지원, 가변형 좌석·음향·조명 등 공연 필수 인프라를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지방 거점 체육시설을 K-팝 친화적 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이번 사업이 지역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대관 전쟁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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