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중·꺾·고(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고집)’ 정신, 결국 독이 됐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서 한국 축구를 일으킨 키워드는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였다. 불굴의 의지와 투지를 상징하는 단어로 국민들에게 울림을 전달했다. 하지만 4년 만에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끈 홍명보 전 감독은 독단적인 철학으로 실패에 직면했다.
여러 차례 모의고사서 허점이 드러났는데도 스리백을 붙들었고,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도 외곬으로만 나아갔다. 조별리그 탈락을 넘어 무기력했던 과정에서 실망감을 키웠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2일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을 서울경찰청에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이어 “국민을 대표하는 감독이라면 연봉과 계약 내용 등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며 “능력이 안 되는데도 국민을 기만해 돈을 받았다면 폭넓게 보면 배임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물론 실제 혐의 성립 여부는 향후 수사를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홍 전 감독의 역량을 향한 질타가 연일 쏟아진다. 월드컵을 1년 앞둔 동아시안컵서 스리백을 꺼낸 뒤 플랜 A, B 모두 준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9월부터 본선 직전까지 치른 평가전 10경기 중 9경기에서 스리백을 가동했다. 브라질전(0-5), 코트디부아르전(0-4) 완패에도 우직함을 뽐냈다. 카를로 안첼로티 브라질 감독이 이례적으로 수비 간격의 허점을 짚었지만, 홍 전 감독은 ‘오답노트’를 펼치지 않은 채 본시험으로 향했다.
사실 고집불통 사령탑을 향한 분노는 한국만의 풍경이 아니었다. 이번 대회서 독일과 네덜란드, 우루과이 팬들도 저마다의 ‘홍명보’와 싸웠다. 독일의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은 3회 연속 조기 탈락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소통 부족, 의구심 가득한 기용 방식 및 운영 문제 등으로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네덜란드의 로날드 쿠만 감독은 갑작스러운 스리백 전환으로 탈락한 뒤에도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루과이의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도 일방적인 전술과 선수 기용, 소통 문제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버티던 고집도 성적 앞에서는 오래가지 못했다. 쿠만 감독과 비엘사 감독은 대회가 끝난 뒤 잇따라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리더의 역할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 있지 않다. 수많은 의견을 듣고, 때로는 자신의 신념을 수정하며, 조직이 가장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데 있다. 독단은 결단력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과가 실패로 끝났을 때는 가장 위험한 리더십의 형태가 된다.
북중미월드컵은 이를 명확히 보여줬다. 독일과 네덜란드, 우루과이, 그리고 한국까지. 감독들은 저마다 자신의 축구를 고집했지만, 팬들이 분노한 이유는 패배 자체가 아니었다. 비판을 외면하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결국 리더십은 자신이 얼마나 옳았는지가 아니라, 실패했을 때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는가로 평가된다. 독선이 지배하는 조직에는 발전도,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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