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야∼호!’
갸루 분장을 한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맥락 없이 외친 이 한마디가 올해 상반기 유튜브를 점령했다.
5인조 걸그룹 리센느가 가요계에 새로운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2024년 8월 발매돼 조용히 묻혔던 곡 러브 어택이 데뷔 2년 만에 역주행하더니 멜론 톱100 차트 5위까지 올라섰다. 또 각 멤버의 고향인 거제시, 경주시, 수원시 홍보대사 위촉에 지상파·종편 예능 출연까지 최근의 인기는 ‘중소돌의 기적’이라는 수식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숫자로 보면 이 기적의 크기가 더 선명해진다. 원이의 개인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는 1일 현재 구독자 119만명을 돌파해 리센느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 62만명을 앞질렀다. 개인 부캐 채널이 본채널을 추월한 셈이다. ‘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 영상은 865만회, ‘저희도 리센느입니다’는 698만회, ‘사투리 봉인해제’는 661만회를 기록 중이다. 총 20개의 업로드 영상 중 대부분이 300만회 이상으로 그야말로 경이로운 조회수다.
수년간 열심히 활동해왔지만 인지도를 늘리지 못한 리센느는 단 한편의 출연으로 기회를 잡았고 이를 멋지게 살려냈다. 개그맨 이선민, 유영우와 유튜브 채널 ‘나의 연수아저씨’에서 운전을 배운다는 독특한 콘셉트로 호흡을 맞추며 리더 원이가 인지도를 올리자 소속사가 아닌 외부 제작사가 나서 개인 채널을 만들었다. 이후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출연해 갸루의 대흥행을 이끌었고, 신라공주 제나가 사투리 영상으로 또 한번 대박을 쳤다. 이후에는 또다른 멤버 메이와 리브가 불협화음 콘셉트로 출연해 폭발력을 이어갔다. 개성있는 멤버들의 잇단 유튜브 영상이 줄줄이 터지면서 리센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걸그룹이 됐다. 본캐가 유튜버, 부캐가 걸그룹이 된 묘한 상황에 팬들은 환호하고 있다.
리센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석적인 데뷔공식 외에 또 다른 흥행공식이 작동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한 사례다. 그 정체는 권력 이동이다. 과거 무명 그룹이 대중 앞에 서려면 방송국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음악방송 PD, 예능 작가가 누구를 무대에 세울지 결정했다. 자본과 인맥을 쥔 대형 기획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이유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이런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멤버 개인의 유튜브 채널과 숏폼이 인지도를 만들며 속칭 뜨는 통로가 됐다.
과거의 역주행은 외부 이용자가 올린 직캠이나 댓글 모음이 알고리즘을 우연히 탄 결과였다. EXID의 위아래가 팬튜브 직캠 하나로 부활했고 브레이브걸스는 숙소 짐까지 뺀 상황에서 과거의 곡 롤린이 재발굴돼 기사회생했다. 그런데 리센느의 경우는 설계된 우연으로 보인다. 소속사가 아닌 외부 제작사가 개입해 ‘공식’ 로고를 뗀 부계정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멤버 개개인의 캐릭터를 팬덤 밖 언어로 번역해 알고리즘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전략이 통하는 이유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속성 자체에 있다. 음악방송 무대는 세트·의상·헤어메이크업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쏟고도 실제 노출은 3분 안팎, 그마저 편성 시간과 지역의 제약을 받는다. 반면 유튜브는 시차도, 방송사도 없다. 해외 팬은 원하는 시간에 접근하고 멤버의 짧은 리액션이나 예상 밖 애드리브 하나가 쇼츠로 무한 재가공된다. ‘편성된 3분’을 파는 방송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가 유튜브 시장이다.
다만 이 셈법에도 함정은 있다. 파이리, 치바 갸루, 경주 고윤정, 리트와 매트까지 유튜브가 리센느에게 준 것은 어디까지나 캐릭터이지 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밈은 입구일 뿐 출구가 아니다. 거제 야호가 끌어온 관심을 붙드는 것은 결국 음악의 힘이고, 롱런을 위해 5명의 멤버들은 이제 무대 위에서 증명해야하는 가장 큰 시험대를 넘어서야 한다.
권기범 연예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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