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을 만들고, 분노를 쌓을 때까지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실패는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북중미 월드컵에서 역대 최악으로 꼽힐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황금세대와 유리한 조 편성 호재를 맞았으나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조별리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씁쓸하게 짐을 쌌다. 이번 실패를 단순히 경기력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이전부터 구조적으로 누적돼 온 헛발질이 쌓인 결과다. 이 중심엔 대한축구협회가 있다.

 

 불신의 씨앗은 경기장 밖에서 시작됐다. 협회가 가장 비판받은 대목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이다. 2023년 2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실제로 정 회장이 감독 추천 권한을 가진 협회 전력강화위원회의 권한을 무력화하고 독단적으로 추천한 사실이 문체부 조사 결과 드러났다.

 

 학습 효과는 없었다. 지난해 7월 홍명보 감독 선임도 불공정 논란을 낳았다. 권한이 없던 이임생 당시 기술총괄이사가 심야에 홍 감독과 만나 추천 절차를 진행한 사실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를 통해 드러났다. 절차상 문제가 지적됐으나 축구협회는 ‘문제없다’는 입장만 고수했다.

 

 결과는 경기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클린스만 체제의 대표팀은 전술적 완성도보다 개인 기량에 의존했고, 팀 응집력까지 붕괴됐다. 협회는 막대한 위약금을 부담하며 경질이라는 결말을 맞았다. 이후 협회는 5개월간 제시 마시, 거스 포옛 등 외국인 지도자들로 후보자를 추렸으나 결국 홍 감독을 선택했다. 당초 대표팀에 대한 뜻이 크지 않았고 K리그1 울산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결국 애먼 사람을 설득한 결과는 월드컵 1승2패, 조별리그 탈락이다. 협회의 과정과 결과는 모두 설득력을 잃었다.

 

 핵심은 특정 대회의 실패가 아니다. 고착화 구조 속에 한국 축구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협회의 의사결정 방식은 굳어졌고, 바뀌지 않은 채 반복돼 왔다. 과거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추진 논란,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논란 등으로 자책골을 넣었으나 변화는 없었다.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 사이 선수들은 시간도, 팬들의 따뜻한 응원도 잃었다. 대표팀을 향한 신뢰도도 함께 무너졌다.

 

 협회의 헛발질이 반복돼도 구조의 꼭대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최종 책임자’ 정 회장 체제는 어떤 논란 속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홍 감독 선임 당시 “역대 이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한 축구협회를 본 적 없다”며 정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회장 선거가 다가오자 입장을 바꿨다. 돌연 정 회장 지지로 선회했다. 생존을 위해 주류 편입을 선택한 씁쓸한 장면이었다. 

 

 정 회장은 월드컵 종료 이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홍 감독도 29일부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책임자의 교체는 구조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운영 방식이 그대로라면 결과 역시 달라지지 않는다. 변화가 없다면 바뀌는 건 이름뿐이고, 결과는 또 반복된다. 말뿐인 혁신이 아닌 실행하는 대대적 개혁이 필요하다.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