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남의 나라 경기를 진심으로 응원한 건 처음이네요.”
지난 27일 멕시코 몬테레이 기자단 호텔. 현지 시각으로 오후 1시가 가까워지자 대형 TV가 있는 로비에 한국 취재진이 한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른 조 경기 결과에 따라 홍명보호의 32강 토너먼트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월드컵에서 ‘빅경기’가 아니고서야 취재진도 모든 조별리그 경기를 챙기긴 물리적으로 어렵다. 보통 조별리그 2경기를 치르면 토너먼트 진출 여부도 가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다르다. 각 조 ‘조 3위’도 상위 8위 안에 들면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는 만큼 취재진 역시 매 경기 가슴을 졸이면서 지켜보고 있다. 26일 오전 기준으로 홍명보호가 조 3위 팀 중 6위까지 떨어져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각종 ‘경우의 수’를 계산하느라 취재진은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번갈아 들여다봤다. “이 경기 결과면 조 3위 팀 순위가 어떻게 되는 거냐”, “여기선 누가 이겨야 하냐”는 질문도 끊이질 않았다.
이날 홍명보호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명확했다. I조 세네갈과 이라크와 무승부를 거두고 H조 스페인이 우루과이를 꺾고 G조 이집트가 이란을 꺾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늘 벗어나는 법. 세네갈이 전반 4분 만에 하비브 디아라가 선제골을 넣자 곳곳에서 탄식이 나왔다. 심지어 세네갈이 후반에만 4골을 몰아치자 이를 바라보는 취재진의 표정도 점차 굳어갔다. 이라크를 꺾은 세네갈이 ‘조 3위’ 경쟁에서 홍명보호를 7위로 밀어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낙관적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는 스페인과 이집트가 각각 우루과이와 이란을 꺾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어진 경기에서 스페인의 알렉스 바에나가 전반 42분 선제골을 넣자 취재진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스페인이 우루과이를 1-0으로 꺾으면서 홍명보호도 순위를 그대로 지켰다.
문제는 이집트와 이란전이었다. 전반 4분 만에 이집트 마흐무드 자베르가 선제골을 뽑자 박수가 쏟아졌다. “역시 이집트가 한 방 해주네!” “이젠 됐다”는 취재진의 안도 섞인 목소리가 로비를 채웠다. 심지어 7분 뒤에는 이란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이집트 골키퍼 모스타파 쇼베이르가 막아내자 로비에는 취재진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월드컵에서 남의 나라 경기를 진심으로 응원한 건 처음”이라는 말도 오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반 14분 라민 레자에이안의 동점골이 나오자 취재진은 양팔을 벌리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집트의 공격이 무뎌지자 취재진의 표정에도 초조함이 짙어졌다. 남은 경기시간을 체크하며 “한 골만 더”를 외쳤지만 결국 이집트의 역전은 없었다. 홍명보호의 순위도 32강 진출의 마지노선인 8위까지 떨어졌다.
물론 아직 홍명보호가 탈락한 건 아니다. 이제 지켜봐야 하는 건 27일 마지막 L조와 K조, J조의 결과. 극적으로 32강으로 향할 것인지, 아니면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갈 지는 남은 3개 조 경기가 모두 끝나야 결정된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취재진이 남의 나라를 이토록 간절하게 응원하는 풍경은, 홍명보호가 처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었다.
몬테레이=김진수 기자 kjlf200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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