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신사: 악귀의 속삭임’, 묘하게 자꾸 생각 나는 매운맛

보통의 호러 영화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괴물이나 잔인한 시각적 충격으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면,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은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세월의 때가 찌든 폐신사, 끝이 보이지 않는 폐터널, 어딘가 수상한 기도 공간. 눅눅하고 음습한 공간이 사람을 먼저 집어삼킨다.

 

신작 ‘신사: 악귀의 속삭임’은 악귀의 형상을 서둘러 꺼내 드는 법이 없다. 대신 오랜 시간 방치되어 썩어가는 공간의 분위기로 화면을 서서히 물들인다. 관객은 ‘무언가 나올 것 같다’는 근원적인 불안감을 안고 인물들과 함께 그 음침한 공간을 걷게 된다. 기괴한 형체가 주는 충격보다 장소가 뿜어내는 기묘한 공기가 공포의 시작점이다.

 

줄거리는 명료하다. 일본 고베의 폐신사를 답사하던 대학생 세 명이 사라진다. 특별한 신기를 지닌 박수무당 명진(김재중)이 사건을 추적하며 정체불명의 악귀와 맞서는 이야기다. 한국 샤머니즘의 무속 신앙에 일본 호러 특유의 정적인 감성을 결합했다. 익숙한 오컬트 문법을 낯설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뒤틀었다.

 

가장 시선을 끄는 부분은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공포영화들이 세트장으로 구현한 폐병원이나 폐교에 갇혀 있었다면, 이 작품은 일본 고베 올 로케이션을 시도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14.6km의 폐터널, 냉기가 서린 냉동창고, 세월의 때가 겹겹이 앉은 폐공장, 신성함을 잃고 타락한 폐신사까지. CG나 세트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실제 공간의 눅눅한 배경이 영화에 생생한 현실감을 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도 화면 구석구석을 살피게 만드는 긴장감. 공포영화에서 장소가 하나의 주체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정적인 공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배우들의 호연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김재중의 연기 변신이 인상적이다. 그가 연기한 박수무당 명진은 미디어가 소비해 온 일반적인 무당 캐릭터와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요란하게 북을 치며 접신을 하는 모습 대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건조한 눈빛으로 극을 이끈다. 보는 사람은 편한데 하는 사람은 어려운 연기다.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 안으로 꾹꾹 눌러 담는 방식. ‘배우 김재중’의 스펙트럼이 한뼘 더 넓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후반부 마지막 시퀀스에서 명진이 마주하는 가혹한 현실은 장황한 대사 없이 오직 그의 표정 변화 하나만으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공성하 역시 극의 중심을 안정적으로 지탱한다. 한·일 합동 프로젝트 매니저 유미 역을 맡은 그는 공포물에서 흔히 소모되는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사라진 동생을 찾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폐신사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는 집념을 보여준다. 서사의 강력한 동력이다. 걱정과 공포, 혼란과 결연함이 맞물리는 복잡한 심리를 지극히 현실적인 연기로 풀어내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신사’가 발견한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이 다른 두 배우가 빚어내는 호흡은 이 기이한 세계관을 현실의 영역으로 붙들어 매는 닻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구태의연한 설명을 과감하게 덜어낸 연출은 요즘의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명진의 전사나 악귀 락샤샤의 구체적인 기원 등이 극도로 요약되어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남을 여지가 있다. 인물들의 풍성한 비하인드 설정이 편집 과정에서 생략된 점은 아쉽지만, 역으로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영화로 다가올 수 있겠다.

 

‘신사: 악귀의 속삭임’은 화려한 K-오컬트의 속도감 대신 일본 호러 특유의 정적과 불안한 공기를 선택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완성했다.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 없이도 관객의 발목을 붙잡는 힘이 있다. 영화가 끝난 뒤 머릿속에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 것은 악귀의 끔찍한 형상이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던 어두운 폐터널, 외로운 폐신사, 그 안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인물의 욕망들이다. 공간이 만드는 서늘한 여운이 얼마나 길고 강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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