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성인의 비알코올 지방간 유병률은 약 20~30%로, 성인 4~5명 중 1명꼴로 지방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만인의 경우 이 비율이 58~74%까지 높아진다. 문제는 간이 '침묵의 장기'로 불릴 만큼 손상이 진행돼도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 없이 체중이 줄거나 피로감이 사라지지 않는 변화가 반복된다면 단순 컨디션 저하로 넘기지 말고 간 기능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경산중앙병원 내과 여준엽 전문의의 도움말로 중장년층이 알아야 할 간 질환의 신호와 관리법을 알아봤다.
◆침묵의 장기... "증상 나타날 땐 이미 진행됐을 가능성"
간은 우리 몸의 대사·해독·담즙 생성·면역 등 500가지가 넘는 기능을 담당하는 핵심 장기다. 동시에 재생 능력이 뛰어나 일부가 손상돼도 남은 부분이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간세포의 절반 이상이 손상돼도 별다른 자각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침묵의 장기'라 불린다.
그 이전 단계에서 나타나는 신호는 피로감, 전신 쇠약, 식욕 감퇴, 메스꺼움, 소화불량, 오른쪽 윗배의 둔탁한 불쾌감 같은 비특이적 증상이라 일반 소화기 증상과 구분이 쉽지 않다. 이유 없이 체중이 줄고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면 그중 한 가능성으로 간 기능 저하를 의심해볼 수 있다.
여준엽 전문의는 "간 질환의 초기 증상은 일상적인 피로나 소화불량과 구분이 어려워 환자 본인이 알아차리기 어렵다"며 "특히 40세 이후에는 자각 증상이 없어도 정기적인 간 기능 검사로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만성 간 질환의 가장 흔한 시작점은 지방간이다. 간세포 안에 지방이 5% 이상 축적된 상태로, 음주로 인한 알코올성 지방간과 그렇지 않은 비알코올성 지방간(대사이상 지방간)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알코올이 주요 원인이었지만, 최근에는 비만·당뇨병·이상지질혈증 같은 대사 이상과 관련된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한간학회는 비알코올 지방간을 '대사이상 지방간(MASLD)'으로 개념을 확장하며, 비만·인슐린 저항성·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 중 한 가지 이상이 동반된 지방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도 복부 비만이나 당뇨병이 있으면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한간학회는 심한 지방간 환자 4명 중 1명은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시간이 지나며 간경변증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준엽 전문의는 "지방간을 단순히 '간에 기름이 좀 끼었다'는 정도로 가볍게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지방간염을 거쳐 간섬유화, 간경변증, 간암으로 진행할 수 있다"며 "특히 당뇨병이나 비만이 있는 경우에는 지방간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아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어떤 신호를 봐야 할까
간 질환의 신호는 진행 단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초기에는 이유 없는 피로감과 전신 쇠약, 식욕 감퇴, 가벼운 소화불량, 오른쪽 윗배의 묵직한 느낌 정도가 대부분이다. 어깨나 목이 자주 뻐근하거나, 평소보다 쉽게 지치고 피로해소가 안 되는 변화도 살펴볼 만하다. 진행 단계로 갈수록 손바닥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거나 가슴·등에 거미 모양의 모세혈관 확장이 보이고, 눈 흰자나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 소변색이 진해지는 변화, 복부가 부풀어 오르는 복수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이미 간경변증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다.
자가 점검은 어렵기 때문에 혈액검사가 가장 손쉬운 출발점이다. 국가건강검진의 일반검진에 AST·ALT·감마GTP 같은 간 기능 수치가 포함되어 있어 검진 결과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1차 점검이 가능하다. 이상 소견이 있거나 위험 요인이 있으면 복부 초음파, 간 섬유화 스캔(FibroScan), CT나 MRI 같은 영상 검사로 정밀 평가를 진행한다. B·C형 간염 보유자, 가족 중 간암 병력이 있는 경우, 만성 음주자, 비만·당뇨병 환자는 40세 이후 6개월~1년 단위의 정기 검진이 권고된다.
◆식사·체중·간 부담 줄이기
간 건강을 지키는 일상 관리는 간에 들어가는 부담을 줄이고, 대사 이상을 조절하며, 간에 직접 손상을 주는 요인을 줄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식사는 채소, 과일, 통곡물, 생선, 콩류를 충분히 섭취하고 튀기거나 기름진 음식, 단 음료, 가공식품은 줄이는 것이 기본이다. 단순당이 많은 식사는 간세포에 지방을 축적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짠 음식과 술안주성 가공육 섭취 빈도를 줄이고, 식사를 거르지 않고 규칙적으로 먹는 습관도 중요하다.
비만은 비알코올성 지방간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체중을 5~7% 줄이면 지방간이 호전된다는 연구가 다수 보고된다. 단, 급격한 체중 감량은 오히려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대한간학회는 일주일에 1kg 이상의 급격한 체중 감소는 심한 지방간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 천천히 꾸준한 체중 감량이 권고된다. 주 3~5회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내장지방이 줄어들고 인슐린 감수성이 개선된다.
간 부담 줄이기도 중요하다. 알코올은 가장 직접적인 간 손상 요인이다. 알코올성 간 질환은 금주만으로도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다. 또한 간에 좋다고 알려진 민간요법이나 건강보조식품, 한약, 생약제도 검증되지 않은 경우 오히려 간 손상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진통제, 항생제 등 처방 약도 자의적으로 장기 복용하면 약물성 간염을 일으킬 수 있다.
여준엽 전문의는 "간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을 챙겨 먹으면서 정작 술과 야식을 줄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검증된 생활습관 개선이 어떤 보조식품보다 효과적이고, 무엇보다 간에 새로운 부담을 더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간 질환, 치료 가능할까
간 질환에 대해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한 번 나빠진 간은 회복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간은 재생 능력이 뛰어난 장기로, 손상 원인이 조기에 제거되면 상당 부분 회복이 가능하다. 지방간은 체중 관리와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호전되는 경우가 많고, B·C형 간염도 항바이러스제로 진행을 막거나 일부에서는 완치가 가능해졌다. 알코올성 간 질환도 금주가 유지되면 회복 여지가 있다.
문제는 시점이다. 간경변증으로 진행된 뒤에는 정상 간으로의 회복이 어렵고, 간암 발생 위험도 함께 높아진다. 만성 간염이나 지방간을 가진 사람이 정기 검진을 받지 않다가 황달이나 복수가 나타난 시점에 병원을 찾는 경우, 이미 치료의 선택지가 줄어든 상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여준엽 전문의는 "간 질환은 조기에 발견할수록 회복 가능성이 크고,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약물과 치료법도 발전해 있다"며 "이유 없는 피로나 체중 감소 같은 작은 변화를 무심코 넘기지 않고, 건강검진 결과를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간을 지키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