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드컵 아스트로] 오현규의 영웅 서사는 이제 시작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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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시작이다.”

 

 4년 전이었다. ‘27번째 태극전사’라는 예비 엔트리로 한국 축구대표팀에 합류해 카타르 월드컵으로 향했다. 개막 전 웃으며 단체사진을 찍었지만, 그중 등번호가 없었던 건 자신뿐이었다. 부끄럽고 속상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날 밤 일기장에 “앞으로 4년간 준비해서 당당히 등번호를 달고 오면 된다. 꼭 해내자. 이제 시작이다”라고 쓰며 다짐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 나설 자신의 뒷모습도 상상해 그렸다. 직접 그린 유니폼엔 ‘H G OH’와 ‘18’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18번을 단 오현규는 한국의 16년 만에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승리를 이끈 영웅이 됐다. 

 

 묵묵히 자신의 시계를 돌렸다. 카타르 월드컵에 다녀온 이듬해 1월,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으로 이적했다. 유럽 진출 꿈을 이뤘으나, 시련을 마주했다.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꾸준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벨기에로 무대를 옮겼다. 헹크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고, 지난 2월부턴 튀르키예 베식타시 유니폼을 입고 펄펄 날았다. 이적 후 13경기서 6골1도움을 기록하는 등 단숨에 핵심 공격수로 떠올랐다.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는 사이사이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 호출도 꾸준히 받았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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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월드컵의 계절, 오현규는 간절히 바라던 등번호를 달았다. 기쁨도 잠시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 위에 얹어졌다. 관중석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할 부모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현규의 부모는 남양주에서 추어탕 전문점을 운영하며 그를 키워냈다. 남들이 이유식을 먹을 나이, 오현규가 추어탕에 밥을 말아 먹었던 배경이다. 부모는 아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과감히 셔터를 내렸다. 3주간의 휴무 공지를 내걸고 멕시코를 찾았다. 이처럼 그라운드서 열심히 뛰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경기를 앞두고 탈까지 났다. 체코전 당일인 지난 12일 심한 설사로 탈수 증상이 찾아왔고 열이 38도까지 치솟았다. 출전 여부 역시 불투명했다. 다행히 대표팀 의료진의 발 빠른 치료를 통해 점심 이후 회복했고, 경기장에 도착했을 땐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다.

 

 영웅이 되기까지 10분이면 충분했다. 1-1 동점이던 후반 24분 그라운드를 밟았다. 후반 35분 황인범(페예노르트)의 낮은 크로스를 받은 그는 문전에서 왼발로 마무리하며 역전 결승골을 터뜨렸다. 관중석으로 달려가 세리머니를 펼치며 기쁨을 만끽했다. 자신이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상징’ 18번의 주인인 이유를 증명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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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규는 “4년 전 내가 꿈꿨던 대로 이렇게 첫 경기에서 득점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고 기쁘고,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것 같다”며 “사실 열이 엄청 올라서 내가 뛸 수 있을까 걱정도, 의구심도 많이 들었다. 근데 이렇게 골 넣으려고 아팠던 것 같다”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4년 전 설움은 뜨거운 원동력이 됐고, 목표에 대한 집념은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다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국은 체코전 승리로 32강 진출의 9부 능선을 넘었다. 남은 조별리그 2경기(멕시코·남아공전)를 지나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이 길목마다 빛날 오현규의 발끝에 기대감이 쏠린다. 한국의 핵심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그의 영웅 서사는 이제 시작이다.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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