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친구들이 내년에는 반려견으로 ‘도그데이’를 찾길 바라요. 우리 ‘몽이’처럼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아 화제가 된 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도 특별한 손님들이 방문했다. SSG랜더스가 도그데이(Dog day)를 맞이해 초청한 반려견, 그리고 유기견이었다. 이날 10살 반려견 몽이와 경기장을 찾은 강서연-황지우 씨 커플은 “몽이도 파양됐다가 우리를 만나 가족이 됐다. 유기견도 챙기는 이번 행사가 더 뜻깊고 뿌듯하다”며 엄지를 세웠다.
도그데이는 야구팬이 반려견과 함께 ‘직관’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이벤트로, 이땐 랜더스필드 외야 잔디석 ‘몰리스 그린석’이 반려가족들의 전용 구역이 된다. 햇수로 14년째를 맞이한 도그데이는 2022년부터는 매년 1회 이상 연례행사로 열리고 있다. 반려동물 동반 관람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여는 구단은 프로야구인 KBO리그를 넘어 국내 전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SSG가 유일하다.
◆예비 반려인들과 교감한 유기견 11마리… 그라운드 외야에서 ‘입양 퍼레이드’
올해 도그데이는 지난 5일과 이날 KT WIZ전에서 진행됐다. 특히 이날은 반려견 121마리와 보호자 296명 외에도 동물보육원 인천본부에서 보호 중인 유기견 11마리가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동물보육원 인천본부는 주로 파양 당한 강아지와 구조한 고양이를 돌보며 입양을 지원하는 단체다.
이번 특별한 도그데이에 대해 SSG 관계자는 “야구장을 찾는 팬들이 자연스럽게 유기견 입양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입양문화에 공감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 3시간 전부터 경기장 1루 광장인 프런티어 스퀘어에서 입양 문의 부스가 운영됐다. 방문객들은 동물보육원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받은 간식을 유기견에게 직접 먹이며 교감했다.
오랜 시간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마주친 12살 SSG팬 최은성 군은 “강아지가 너무 보들보들하고 포근하다. 간식도 잘 먹어서 기뻤다”며 눈을 반짝였다. 은성 군의 아버지는 “유기견이라고 하면 막연히 상처 받아서 마음을 열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직접 보니 사람을 너무 잘 따라서 놀랐다”고 말했다.
8살 반려견 대니와 입양 상담 부스를 찾은 보호자는 “유기견을 입양하려고 해도 인터넷으로만 봐서는 강아지에 대해서 잘 알기 어렵다. 이렇게 직접 만나서 교감해보는 게 중요하다”며 “이런 자리가 도그데이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일반 경기에서도 자주 열리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예비 반려인들과 마음을 나눈 강아지들은 경기 전 ‘입양 퍼레이드’를 통해 그라운드 외야 워닝트랙을 걸으며 팬들 앞에서 또 한 번 매력을 뽐냈다. 그 모습이 대형 전광판으로도 송출되며 입양 홍보가 됐다.
동물보육원 인천본부 관계자는 “오늘 함께한 강아지들은 보호자가 사망하거나 출산 등으로 파양된 아이들이다. 좋은 기회를 주신 SSG 구단에 감사드린다. 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도 강아지들의 사회성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며 “오늘 당장 입양이 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이런 강아지들이 있고 입양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호소가 랜더스필드에서 약 10㎞ 거리에 있다”며 “안락사 없는 보호소인만큼 꾸준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동물보육원 인천본부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이날만 약 150명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SSG 포수이자 반려견 두부와 함께하는 반려인 조형우는 “두부도 유기견 출신이다. 두부를 만난 뒤 매년 유기견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며 “이번 도그데이 행사를 통해서 많은 유기견들이 새로운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그 키스타임, 응원단상 장기자랑… 전국 반려인 야구팬들의 축제
이날 경기는 전국 반려인 야구팬들의 축제이기도 했다. 플레이볼 10분 전, 영화 <라이언킹> OST가 흐르는 가운데 보호자들이 각자 반려견을 안고 위로 들어 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11살 반려견 제노와 SSG 유니폼을 맞춰 입은 보호자는 “제노 유니폼만 3벌인데 가장 승률이 좋은 유니폼을 입혔다”며 “제노가 이 유니폼을 입었을 때 에레디아 선수 성적이 좋아서 오늘도 기대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1회말 SSG 외국인 타자 에레디아가 몰리스 그린석 방향으로 투런 홈런을 날렸다.
KT팬들도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6살 보더콜리 ‘하니’와 함께한 최예지 씨는 “도그데이의 상대팀이 된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강아지와 야구장에 왔다”며 “2017년부터 KT를 응원하면서 직관 때면 집에 강아지를 두고 다녀야 해서 항상 미안했다. 직접 와보니 너무 좋고 반려가족을 위한 배려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SSG와 KT 외에도 한화, 두산, LG, 삼성 등 다른 KBO리그 구단 유니폼을 입은 반려견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반려견 조콩이&왕국이와 각각 한화·두산 유니폼을 맞춰 입은 커플은 “강아지들과 야구장에 오는 게 꿈이었는데 오늘 마침내 이뤘다”고 웃으며 “두산과 한화 구단도 반려견과 함께 야구를 볼 수 있는 이벤트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전광판에도 강아지 관중의 모습이 수시로 잡혔다. 4회 키스타임 역시 ‘도그 키스타임’으로 진행됐는데 한 강아지가 고개를 4~5번 돌리며 끝까지 보호자의 입술을 거부(?)해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5회말 종료 후에는 응원단상에 오른 반려견들의 장기자랑이 펼쳐져 30초 동안 ‘기다려’를 성공할 때마다 박수가 이어졌다.
만족도가 매우 높은 도그데이였지만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었다. 행사 자체가 아닌 반려동물 굿즈에 관한 아쉬움이었다. 이날 SSG 구단용품숍에서는 반려동물 유니폼 등 펫 용품이 구비돼 있지 않았다. 지난해 리드줄 등을 구매했다는 반려인은 올해는 살 게 없다며 아쉬워했다.
또 다른 반려인 팬은 중대형견을 위한 유니폼이 나오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반려견 ‘덕구’와 커플 유니폼을 입은 보호자는 “구단 유니폼은 소형견용 밖에 없어서 5세용 유니폼을 사서 따로 리폼을 했다”며 “아무래도 정식 제품처럼 핏이 딱 떨어지지 않아서 아쉽다. 몸이 큰 강아지용 유니폼이 출시되면 곧바로 구매할 텐데…”라고 말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힌 반려견 ‘레오’와 경기장을 찾은 보호자는 “이정후 선수의 팬이라 직관을 하러 미국에 갔다가 강아지용 유니폼이 있어서 구매를 했다”며 “한국 KBO리그는 반려견용 용품이 많지 않은데 미국은 강아지 유니폼은 물론이고 스카프, 하네스, 야구공 장난감 등 반려동물을 위한 굿즈가 다양해서 너무 부러웠다”고 전했다.
한편 올해 도그데이는 2경기 모두 홈팀인 SSG가 승리했다. 5일 6-5 역전승에 이어 이날 7-0 완승을 거뒀다. 그 과정에서 반려인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다. 조형우는 5일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이날도 타점을 올렸고, 반려묘 ‘냥이’ 집사 정준재도 5일 1안타 1볼넷에 이날 안타와 타점에 이어 뛰어난 주루플레이로 득점을 올렸다. 반려견 ‘제티&제롱이’ 보호자인 김민은 5일 경기에서 홀드를 기록했다.
인천=박재림 기자 jami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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