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희의 눈] 도시를 움직이는 새로운 엔진, 공연과 콘텐츠

한때 도시는 공장으로 기억됐다. 어느 도시에 큰 공장이 들어서느냐, 어떤 기업의 본사가 있느냐,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출근하느냐가 도시의 힘을 결정했다. 항구가 있고, 산업단지가 있고, 굴뚝이 있고, 퇴근길의 식당 불빛이 켜지면 그 도시는 살아 있다고 여겨졌다. 도시의 경쟁력은 생산량으로 설명됐고, 지역경제는 대체로 제조업의 온도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요즘 도시는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누군가의 노래 한 곡이 도시를 흔들고, 드라마 촬영장소가 관광지가 되고 어떤 스타의 공연 일정 하나가 호텔 예약률을 바꾸며, 팬들이 들고 오는 응원봉이 지역 상권의 불빛을 밝힌다.

 

 예전 같으면 “공연 하나 한다고 도시가 달라지겠느냐”고 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말은 조금 낡아 보인다. 공연은 더 이상 공연장 안에서만 끝나는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공항에서 시작해 숙소, 식당, 카페, 지하철, 택시, 야경, 기념품 가게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도시 경험이 됐다.

 

BTS의 부산 공연을 앞두고 부산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는 소식은 그래서 단순한 연예 뉴스로만 볼 일이 아니다. 한 팀의 가수가 무대에 서는 일이지만, 그 무대를 둘러싼 파장은 도시 전체로 번진다. 부산시는 공항과 부산역에 환영 프로그램을 만들고, 웰컴센터와 관광 안내, 짐 보관 서비스, 드론쇼, 미식 프로그램까지 준비하고 있다. 팬들은 공연을 보러 오지만, 실제로는 도시를 소비한다. 노래를 들으러 왔다가 바다를 보고, 응원봉을 흔들러 왔다가 돼지국밥을 먹고,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광안리의 밤과 부산역의 기억을 가져간다. 말하자면 BTS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지만, 도시는 그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자신을 홍보하는 셈이다.

 

이 장면은 요즘 경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지역경제가 물건을 만들어 파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의 지역경제는 경험을 설계해 파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어떤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만 가능한 감정을 사러 간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오래전부터 해운대로 대표되는 바다와 항구, 영화제와 야구, 음식과 사투리의 도시였다. 여기에 BTS라는 세계적 팬덤이 결합하는 순간, 부산은 잠시 동안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 플랫폼이 된다. 도시가 무대가 되고, 팬들이 관객이자 소비자가 되며, 지역 상권은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물론 이런 흐름을 마냥 낭만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큰 공연이 열릴 때마다 반복되는 숙박요금 급등, 바가지 논란, 교통 혼잡, 지역 주민의 불편은 반드시 관리되어야 한다. 팬덤 경제가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은 맞지만, 그 팬덤을 단기 매출의 대상으로만 보면 오히려 도시의 이미지는 망가질 수 있다.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가장 예민한 소비자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위해 먼 길을 오는 사람들은 그 도시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정확히 기억한다. 친절한 안내 하나, 합리적인 가격 하나, 안전한 귀가 동선 하나가 도시의 브랜드가 된다. 반대로 불친절과 바가지는 그 도시의 가장 오래 남는 악플이 된다.

 

중요한 것은 공연 이후다. 축제는 며칠이면 끝난다. 그러나 좋은 도시는 그 며칠의 열기를 다음 이야기로 연결할 줄 안다. 부산을 찾은 외국인 팬들이 “공연 좋았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산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도시 전략이다. 결국 도시 경쟁력은 건물의 높이보다 기억의 깊이에서 나온다. 공항에서 만난 첫인상, 택시기사의 말 한마디, 공연장 주변의 질서, 늦은 밤 먹은 국밥 한 그릇, 바다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모여 도시의 자산이 된다.

 

우리는 아직 문화의 경제적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같은 산업만 경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나라를 먹여 살리는 기둥이다. 하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점점 더 콘텐츠에서 나온다. 공장은 제품을 만들지만, 콘텐츠는 사람을 이동시킨다. 제품은 팔리고 나면 끝나지만, 좋은 경험은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을 남긴다. 이 마음이 쌓이면 관광이 되고, 소비가 되고, 도시 브랜드가 된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앞으로의 도시는 단순히 인구가 많은 곳만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유 없이 도시를 찾지 않는다. 볼 것, 들을 것, 먹을 것, 찍을 것, 이야기할 것이 있어야 움직인다. 그런 면에서 BTS 부산 공연은 하나의 힌트다. 도시는 이제 도로와 건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감정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퍼뜨리고 싶은 장면이 있어야 한다. 도시에게도 스토리가 필요하다. 도시 행정도 이제 토목의 언어만이 아니라 콘텐츠 문화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한때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문화”를 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문화가 먹고사는 문제가 됐다. 노래 한 곡이 비행기표를 팔고, 공연 하나가 호텔을 채우며, 팬덤 하나가 도시의 밤을 밝힌다. 공장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도시를 움직이는 엔진이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와야만 도시가 살아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무대의 조명이 켜지고, 광장의 사람들이  모이고, 누군가의 노래가 도시 전체를 흔들 때도 도시는 살아난다.

 

도시는 이제 공장보다 콘서트로 움직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그 도시를 다시 기억한다면, 그 순간 도시는 단순한 개최지가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부산이 이번 공연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며칠간의 특수가 아니라, 오래 남는 호감이다. 팬들이 떠난 뒤에도 남는 도시의 표정, 그것이 진짜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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