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 ‘백룸’ 신드롬이 한국에도 상륙하면서 ‘유튜버 출신 영화감독’에 대한 관심도 국내 언론미디어를 통해 연일 반영되는 추세다.
먼저 ‘백룸’은, 많이들 알다시피,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유행한 리미널 스페이스 호러 콘셉트다. 해당 콘셉트를 2022년 유튜브 영상 연작으로 소화해 신드롬을 일으킨 게 당시 17세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케인 파슨스였고, 그 바이럴 열풍으로 할리우드의 관심을 끌어 이번 극장판 ‘백룸’ 감독까지 맡게 됐다. 파슨스는 현재 20세다.
물론 여기서 ‘유튜버 출신 영화감독’이란 큰 분류로 이슈가 넘어가게 된 건 유사 경우가 동 시기 한 명 또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과 100만 달러 제작비를 들인 공포영화 ‘옵세션’으로 지난 4일까지 북미에서만 1억218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스타로 떠오른 감독 커리 바커가 또 있다. 역시 젊은 26세로, 유튜브 스케치 코미디 채널을 운영하며 유명세를 누리다 극장용 장편영화 데뷔에 이르렀다. 한편, 올해 초엔 게임 유튜버로 잘 알려진 한국계 혼혈 유튜버 마크 피슈바크가 인디 호러게임 원작 영화 ‘아이언 렁’에서 감독, 각본, 주연, 편집, 총괄제작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300만 달러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4000만 달러 수익을 거뒀다.
이처럼 ‘유튜버 출신 영화감독’들이 올해 차례로 등장해 모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니 갑자기 이슈 거리가 됐지만, 엄밀히 흐름 자체는 수년 전부터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예컨대 2023년 작 ‘톡 투 미’와 지난해 ‘브링 허 백’으로 흥행 연타를 기록하며 2020년대 호러영화 거물로 급성장한 대니 필리푸-마이클 필리푸 형제 감독도 유튜버 출신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서 액션과 호러를 넘나드는 엽기 유튜브 채널 ‘랙커랙커’를 운영하며 유명세를 누리다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막상 극장용 장편영화에선 무겁고 진지한 톤의 호러를 지향해 이목을 끈다.
2018년 작 ‘에이스 그레이드’로 뉴욕비평가협회와 전미비평가위원회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쓴 감독 보 번햄도 엄밀히 말하자면 유튜버 출신이다. 16세였던 2006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일련의 코미디 노래들을 업로드하며 극초기 유튜브 스타 중 하나로 거듭났다. 그 유명세 기반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도 주목받았고, 이어 장편영화 감독 데뷔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경우. 이 밖에 크리스 콜린스나 조 페나, 마이클 섕크스 등도 유튜브 기반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결국 극장용 장편영화 연출에 이르렀다.
몇 가지 공통 맥락을 짚을 수 있다. 먼저 대부분 호러영화로 극장용 장편영화계 문을 두드렸단 점이다. 이전까지 딱히 호러에 치중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던 유튜버가 아니었어도 그렇다. 또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극장용 장편영화계 진출이 유난히 빈번해졌고, 팬데믹 이전 장편영화를 연출한 몇 안 되는 유튜버들은 호러 이외의 장르를 택했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는 모두가 호러로 직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단 것.
상황은 대략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일단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이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세계 대중문화계에 있어 너무나도 거대한 분기점이었단 점이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주류문화와 비주류문화 간 벽이 무너지고, 레거시 미디어와 뉴 미디어 구분도 희미해지면서 격렬하게 콘셉트와 인적자원이 넘나들기 시작했다. 팬데믹 동안 대중의 외부 활동이 극도로 제한된 탓에 개개인 온라인 체류시간과 미디어 소비량이 급증하자 어마어마한 양의 콘텐츠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소비되면서 미디어 플랫폼 간 경계가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렇게 탄력을 얻은 뉴 미디어 스타들 경우 레거시 미디어 입성 시 이런저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직행 코스를 밟은 탓에 일단 안전장치 삼아 마이크로 예산으로도 상업영화 시장에서 동등하게 활약할 수 있는 호러 장르에 천착하게 됐단 순서. 지금 시장에 깔린 ‘유튜버 출신 영화감독’들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다. 개중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든 축이라 봐야 ‘백룸’의 1000만 달러 정도. 여전히 미국 독립영화 규모에서 벗어나질 않고, 대부분 100~300만 달러 정도 마이크로 예산 중심이다. 물론 이 같은 시험대에서 합격점을 받은 이들은 향후 더 많은 예산으로 큰 규모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장르 역시 ‘저예산의 상징’ 호러를 벗어나 다양한 범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다.
이제 한국을 돌아보자. 한국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저 ‘경계’가 무너져온 건 맞다.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나 곽튜브, 먹방 유튜버 쯔양 등은 이제 레거시 미디어를 넘나드는 스타덤에 올랐고, 트위치 스트리머들과 틱톡커 출신으로 구성된 걸밴드 QWER은 메인스트림급 인기를 얻어냈다. 그런데 제작 측으로 넘어가면 이렇다 할 사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짧은 대본’ ‘좋좋소’ 등 유튜브 단편 드라마들이 큰 호평을 얻으며 신드롬적 인기를 구가했음에도 그렇다. 유튜브 단편 경험 정도론 극장용 장편 상업영화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할리우드도 ‘유튜버 출신 영화감독’들에 ‘모든 것’을 다 맡겨놓진 않는다. 화두가 된 ‘백룸’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일단 각본으로 ‘홈랜드’ ‘웨스트월드’ 등 TV 드라마를 통해 잔뼈가 굵은 베테랑 각본가 윌 수딕을 기용, 장편영화 스트럭쳐를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줬다.
제작자 차원에선 한층 용의주도하다. ‘컨져링’과 ‘인시디어스’ 프랜차이즈로 제이슨 블럼과 함께 호러영화계 양대 산맥을 이루는 제임스 완, ‘롱레그스’ ‘더 몽키’ 등으로 2020년대 호러영화 선두그룹에 나선 오스굿 퍼킨스 등 기성 감독들이 제작자로 역할 하고 있다. 이들이 케인 파슨스에 기대한 건 어디까지나 유튜브 소비자들을 휘어잡은 독특한 ‘감각’이었고, 나머지 경험을 필요로 하는 전문적 요소들은 업계 베테랑들이 조율해 통제한단 노선. 신선한 감각을 지닌 신예와 노련한 베테랑들 간 협업이 이뤄진 현장인 셈이다.
한국 영화계도 이 같은 협업 개념을 통해 뉴미디어에서 주목받은 인재들을 상업영화계에 입성시키도록 대대적 흐름을 조성해 볼 필요가 있다. 현시점 한국영화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차세대 양성 실패가 꾸준히 거론되는 현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한 과정과 세월을 거쳐 기성 상업영화계에 입성하느니 바로바로 제작하고 수익도 얻어낼 수 있는 뉴 미디어가 젊은 세대에 더 매력적이어서 그리로 인재들이 쏠리다 보니 벌어진 게 ‘차세대 실종’이란 견해도 있는데, 그렇다면 바로 그 뉴 미디어에서 검증된 인재를 뽑아 올려 기성 상업영화계에서도 활약하도록 물꼬를 터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이미 플랫폼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소비하고 있는데, 공급 측에서 영역 구분에 치중하는 것만큼 기이한 광경도 또 없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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