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문학이 사진의 언어로 다시 펼쳐진다.
단체전 ‘한강을 보다: 여수, 저녁, 채식주의’는 김남호 작가의 제안으로 박태진·조성경 작가가 합류해 완성한 프로젝트다. 한강의 초기 단편 ‘여수의 사랑’,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각각 사진의 문법으로 해석했다.
이 가운데 조성경 작가는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서 감지한 소멸의 감각과 붉은 시간의 이미지를 ‘서랍에 넣어둔 저녁의 파편’으로 풀어냈다. 평면 사진에 머무르지 않고 서랍과 공간 설치를 결합해, 관객이 한강의 시적 정서를 몸으로 마주하도록 구성했다. 조 작가를 만나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한강의 시를 사진으로 옮기는 과정, ‘저녁’과 ‘서랍’이라는 이미지에 담은 의미를 들었다.
-이번 프로젝트 전시 ‘한강을 보다: 여수, 저녁, 채식주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남호 작가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사진가의 독자적인 해석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사진 전시와 사진집 출간 등 다양한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혼자 진행하기보다 여러 사진가와 협업하는 방식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제안에 공감했고, 동시에 무척 흥미롭게 느껴 참여하게 됐다.”
-한강 작가의 여러 작품 가운데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선택한 이유는.
“한강 작가는 1993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등단 이후 20년 만에 발표한 첫 시집이자, 한강 작품 세계의 시작점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무엇보다 시집 제목이 주는 울림이 강하게 다가왔다. 왜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을까. 하루가 저물고 빛이 점차 사라지는 저녁의 이미지를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즐거운 고민에서 이번 사진 작업이 시작됐다.
이 작업은 그동안 이어온 ‘붉은 시간’ 시리즈와도 맞닿아 있다. 기존 작업의 정서를 한강의 시적 세계와 연결하면서, 이를 더 구체적인 이미지와 공간으로 변형하는 과정을 거쳤다.”
-문학, 특히 시를 사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장 고심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독자는 글을 읽으며 자기 내면에서 여백을 채워나간다. 하지만 이를 시각예술로 옮길 때는 추상적인 침묵에 구체적인 형태와 색채를 부여해야 한다. 텍스트의 행간을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번역하는 과정 자체가 이번 작업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가장 먼저 주목한 이미지는.
“‘저녁’이었다.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저녁의 풍경 위에 한강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감지되는 언어와 정서를 사진으로 끌어오려 했다. 그 과정에서 선택한 대상은 ‘구름’이었다.
부서지고 상처받은 영혼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으로 구름을 떠올렸다. 구름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있다. 바람에 의해 흩어지고 파편화된 빛의 형체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강의 시가 지닌 감각과 닿아 있다고 느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평면 사진을 벽에 거는 방식만이 아니라 설치미술적 구성이 더해졌다. 이유가 있나.
“시집 제목 속 ‘서랍’은 이번 작업에서 단순한 가구가 아니다. 인간의 내면, 비밀, 기억의 심연을 상징하는 입체적인 오브제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사진이라는 매체로 기록되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 오브제를 평면 사진 한 장으로만 표현하기에는 깊이를 모두 담기 어렵다고 느꼈다.
부서지고 상처받은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의 존재도 필요했다. 이 역시 사진만으로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시 전반을 함께 논의한 최상식 아트 디렉터와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고, 그 결과 실제 서랍이라는 오브제를 공간 안에 들여놓는 방식을 택했다.
저녁을 서랍에 넣어둔 듯한 감각, 또는 서랍을 열어보는 행위적 서사를 관객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실제 서랍을 설치하는 일은 보조 장치라기보다 필연적인 선택에 가까웠다.”
-관객이 이번 작업을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나.
“우리 마음에는 각자가 갖고 있는 자신만의 서랍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저마다의 저녁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사라져가고 소멸되어 가는 이 시간을 붙잡으려 기록한 저녁이 누군가에게는 부서진 영혼의 자화상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작은 온기로 닿기를 바란다.”
조성경 작가는… 영남대학교 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정제되고 간결한 시각 이미지를 통해 내면의 서사를 은유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시와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탐구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각과 정서의 결을 시적인 시선으로 담아내며, 내면의 울림을 붉은 색채로 투영한 ‘붉은 시간’ 시리즈와 도시의 틈에서 발견한 평온의 순간을 담은 ‘쉼표’ 시리즈를 발표했다. 개인전 ‘쉼표’(2025), 단체전 ‘사이를 잇다’(2026) 등에 참여했다. 제27회 대한민국 영남미술대전 사진 부문 입선, ‘월간사진’ 주목 신진작가 등재 등의 이력을 갖고 있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소니 이미지 갤러리에 입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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