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산업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특징 중 하나는 체계화된 연습생 시스템이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거쳐 완성형 아이돌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그런데 미국 등 해외 음악 시장에서는 이런 연습생 육성 시스템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은 직접 연습생을 트레이닝하기보다 이미 재능과 개성을 갖춘 뮤지션을 발굴하거나 레이블·브랜드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에 더 집중한다. 글로벌 음악 산업에서도 스타 출신 사업가들은 많지만 한국처럼 수년간 연습생을 육성해 아티스트를 내놓는 구조는 드물다.
◆닥터 드레가 발굴한 에미넴…에미넴이 키운 50센트
전설적인 래퍼이자 힙합 프로듀서 닥터 드레(Dr. Dre)가 에미넴(Eminem)을 발굴하고, 다시 에미넴이 50센트(50 Cent)를 영입해 글로벌 스타로 키워낸 되물림 과정이 대표적이다. 1996년 닥터 드레는 동업자와의 갈등으로 데스 로우 레코드를 떠나 레이블 애프터매스를 차린 후 슬럼프를 겪던 중 우연히 에미넴의 믹스테이프를 들었다.
닥터 드레는 백인 래퍼는 성공할 수 없다는 주변의 반대를 무시한 채 에미넴과의 계약을 밀어붙였다. 에미넴은 기대를 뛰어넘는 랩 실력으로 1999년 메이저 데뷔 앨범 ‘더 슬림 셰이디 LP’(The Slim Shady LP)를 초대박 터트렸고 이후 발매한 모든 정규 앨범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다.
데뷔 앨범 대성공 직후 에미넴은 매니저와 함께 힙합 레이블 셰이디 레코즈를 설립했다. 규모를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할 무렵 어떤 레이블의 선택을 받지 못해 뉴욕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50센트를 눈여겨봤고 에미넴은 첫 외부 대형 계약을 맺었다.
2003년 셰이디 레코즈의 로고를 달고 나온 50센트의 메이저 데뷔작 ‘겟 리치 오얼 다이 트라잉’(Get Rich or Die Tryin)은 전 세계적으로 1200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웠다. 50센트의 대성공 덕분에 에미넴의 셰이디 레코즈 또한 2000년대 초반 힙합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레이블로 급부상했다.
힙합 대부 제이지(Jay-Z)도 자신의 레이블 록 네이션을 통해 제이 콜·리한나 등을 발견하고 곧바로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어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특히 제이 콜은 록 네이션 1호 아티스트다. 제이지가 그의 믹스테이프를 듣고 첫눈에 반해 계약이 성사됐다.
힙합뿐 아니라 다른 팝 시장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은 2015년 진저브레드 맨 레코드를 설립한 뒤 첫 번째 소속가수로 제이미 로슨과 계약했다. 오랜 무명 생활을 이어가던 제이미 로슨의 노래를 듣고 레이블 1호 아티스트로 영입했다. 계약 첫해 발매된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아티스트 개성 중시하는 영미권…육성 대신 원석 발굴
해외 레이블과 매니지먼트는 유망한 뮤지션을 찾아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과 마케팅, 투어 등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에미넴의 셰이디 레코드 역시 뮤지션들의 독자성을 존중하며 앨범 제작과 유통을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아티스트는 비교적 높은 자율성을 유지하며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구축한다.
특정한 틀 안에서 트레이닝을 받는 K-팝 시스템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K-팝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찾아내 트레이닝부터 사생활 관리까지 총괄하는 육성 시스템이라면 해외 팝 시장은 이미 자신만의 색깔을 갖춘 아티스트를 찾아내는 발굴 시스템에 가깝다. 이같은 배경에는 문화적 정서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음악 시장은 오랜 기간 싱어송라이터 중심 전통을 유지해 왔다. 특히 미국 음악 산업은 오랫동안 개인의 개성과 자기 서사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지나치게 기획된 이미지나 완벽하게 통제된 시스템은 자유로운 창작 문화와 맞지 않는 셈이다.
연습생을 키우는 데 드는 막대한 고정비와 리스크를 짊어지는 대신 고부가가치 저작권 사업이나 IP 기반의 브랜드 사업을 전개한다. 셰이디 레코드와 록 네이션 등은 아티스트의 매니지먼트 계약과 음반 제작 및 유통을 넘어 그들의 음악 저작권을 관리하는 퍼블리싱 사업, 스포츠 에이전시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브랜드 다각화에 집중한다.
다만 점차 두 시스템의 경계가 점점 흐려질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K-팝은 최근 아티스트의 자율성과 참여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고, 해외 시장 역시 하이브의 한미합작 걸그룹 캣츠아이의 성공 등 K-팝식 퍼포먼스와 팬덤 운영 전략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K-팝 시스템의 장점과 해외 음악 시장의 자유로운 창작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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