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 중 한 차례 잡아내기도 버겁다. KBO리그에 ‘도둑’이 기승이다. 베이스를 훔치는 주자들이 좀처럼 붙잡히지 않는다. 말 그대로 ‘배터리 수난시대’다.
25일 현재 리그 도루 저지율은 23.4%(허용 330개·저지 101개)다. 이 흐름이라면 21세기 최저 수치를 새로 쓸 가능성이 크다. 2001년 이후 기존 최저 기록은 지난해(25.8%)였다. 20년 전인 2006년 32.5%, 10년 전인 2016년 35.0%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도루가 폭증한 건 아니다. 최근 10년간 리그 도루 시도율은 대체로 7∼8%대였고, 올해는 6.7%에 머무르고 있다. 문제는 성공률이다. 2016년 65.9%였던 도루 성공률이 올해 77.0%까지 치솟았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도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도루 저지율은 2001년 31%에서 올해 24%까지 내려왔다. 미국 매체 디애슬레틱은 최근 “피치클락 시대에선 누구나 베이스를 훔칠 수 있다”고 짚었다.
주자의 발이 갑자기 빨라진 게 아니다. 견제 패턴과 투구 간격 등 상대 배터리의 습관을 읽어내는 능력이 좋아졌다는 설명이다. 피치클락이 만든 가장 큰 변화는 투수가 더 이상 마음대로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엔 투수가 공을 오래 쥐고 있거나, 셋포지션에서 멈춰 서거나, 견제를 반복하면서 주자의 스타트를 흔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정해진 시간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
물론 한국야구위원회(KBO)는 MLB처럼 견제 횟수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다. 사무국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다는 입장에 가깝다. 다만 현장은 혹시 모를 변화를 의식하는 듯하다. 2015년 한 경기 양 팀 합산 평균 12.93차례였던 견제 시도는 올 시즌 8.32차례까지 줄었다.
여기에 2년 전부터 1∼3루 베이스 크기가 15인치에서 18인치로 커졌다. 1∼3루 사이 거리는 각각 11.43㎝ 짧아졌다. 야구계 한 관계자는 “최근 규칙 변화는 주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포수와 투수 쪽도 따라오겠지만, 지금은 주자의 발전 속도가 더 빠르다”고 전했다.
포수의 강한 어깨와 빠른 팝타임만으로 막기 어려워졌다. 각 팀 포수 수비이닝 1위인 주전 포수 10명의 합계 도루 저지율은 20.4%에 불과하다. 이 그룹에서 30%를 넘긴 선수는 없다. 박동원(LG)이 28.6%, 한승택(KT)이 27.3%로 상위권이고, 손성빈(롯데·11.8%)과 양의지(두산·10.3%)는 10%대에 머문다.
안방마님만 탓할 일은 아니다. 모 구단 배터리코치는 “도루 저지는 투수 역할도 중요하다. 투구 리듬이 읽힌 데다가 퀵모션까지 늦으면 아무리 송구가 좋은 포수도 잡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투수 역시 주자의 발을 묶을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상대 주자의 리드 폭을 줄이고, 출발 타이밍도 흔들고, 필요할 땐 빠른 퀵모션으로 대응해야 할 터. 이 과정이 무너지면 포수에게 불리한 싸움을 떠안기는 셈이다. 에이스부터 마무리까지 예외가 아니다. 커티스 테일러(NC)는 도루 14개를 허용했고, 잡아낸 건 3차례에 그쳤다. 라클란 웰스(LG)도 도루 10개를 내주는 동안 저지는 1번뿐이었다. 이민우(한화)와 성영탁(KIA) 역시 각각 도루 6개, 5개를 허용했다.
어느덧 정규리그 전체 일정의 ⅓가량을 지난 시점이다. 도루 허용을 줄이는 게 10개 팀의 공통 고민으로 떠올랐다. 리그 도루 저지율이 21세기 최저 수준으로 향하는 가운데, 남은 시즌 투수와 포수가 어떤 돌파구를 찾아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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