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談談한만남] 그저 야구가 좋았던 소년…단장, 전문가가 되기까지

사진=김용학 기자/ 류선규 전 SSG 단장
사진=김용학 기자/ 류선규 전 SSG 단장

“제 인생에서 야구를 뺄 수 있을까요.”

 

스케줄표가 빼곡하다. 정기적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칼럼을 쓴다. SNS 채널을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국 곳곳을 다니며 강의도 한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책을 쓰고 사람들을 만난다. 지난 16일엔 인천시 교육청에서 개최하는 ‘야구☓수학 북콘서트’에 참석했다. 학생, 교직원 등 600여명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지경이지만 표정에선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프로 구단 단장 출신으로서, 새 지평을 열고 있는 류선규 전 SSG 단장이다.

 

‘덕업일치(덕질+직업)’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류 전 단장의 인생과 맞닿아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공부밖에 몰랐다. 이렇다 취미조차 없었다. 남들처럼 하이틴 스타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야구만이 유일한 취미였다. 몇몇 스포츠지를 정독하고 관련 서적을 읽으며 지식을 쌓았다. 그렇게 내디딘 걸음은 직업이 되고, 어느덧 자신의 일부가 됐다.

 

사진=SSG랜더스 제공/ 류선규 전 SSG 단장
사진=SSG랜더스 제공/ 류선규 전 SSG 단장

 

◆ 운명 같은, 만남

 

1981년, 아직 프로야구가 출범하기도 전의 일이다. 고교야구가 인기를 끌었다. 우연히 동대문 운동장 근처를 지나가던 류 전 단장는 한 전파사(전자제품 수리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옹기종이 모인 사람들 틈에서 전시해놓은 TV를 지켜봤다. 경북고와 선린상고(현재는 선린인터넷고)의 결승전이 한창 방영되고 있었다. 류 전 단장은 “박노준 선수가 홈 슬라이딩을 하다 발목을 다쳤는데, 그 장면이 9시 뉴스에까지 나왔다. 꽤나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1년 뒤인 1982년, 프로야구가 첫 발을 뗐다. 지금처럼 중계가 활성화돼 있던 시절이 아니다. 주말에만 MBC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것도 MBC 청룡(LG 전신)이 프로 원년 팀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류 전 단장은 “원래 TV를 안 보는데, 딱 야구할 때만 봤다. 그때부터 MBC 청룡을 좋아했던 것 같다. 대학에 진학하자 LG가 MBC를 인수했다. 첫 해 우승하지 않았나. 워낙 MBC 경기를 많이 봐서 그런지, 다른 팀이 잘해도 못 갈아타겠더라”고 웃었다.

 

사진=김용학 기자/ 류선규 전 SSG 단장
사진=김용학 기자/ 류선규 전 SSG 단장

 

◆ 좀 더 가까이, 몰입

 

대학생이 되면서 야구에 대한 몰입은 좀 더 짙어졌다. 재수를 했으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류 전 단장는 “대학 수업이 재미가 없더라. 전공이 적성에 잘 안 맞는 느낌이 들었다. 1학년 1학기 수업을 거의 안 들었다”고 말했다. 대신, 야구장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대학교만 가면, 원 없이 야구를 한 번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류 전 단장은 “특히 LG가 우승했던 1990년엔 거의 전 경기를 갔다. 나로선 일종의 일탈이었을 수 있다”고 회상했다.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마주한다. 대학 4학년, 준비했던 행정고시시험에 떨어진 것. 이후 공군 장교 시험을 치고자 했다. 포인트는 시험 날까지 시간이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친구 소개로 PC통신의 세계를 알게 됐다. 야구동호회에서 야구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아이디는 ‘myLG’였다. 심도 있는 내용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많은 야구팬들이 인정해줬다. 오죽하면 LG 구단에서도 해당 글을 올라오면 출력해 담당 팀장, 단장, 사장까지 읽었을 정도다. 

 

사진=SSG랜더스 제공/ 류선규 전 SSG 단장
사진=SSG랜더스 제공/ 류선규 전 SSG 단장

 

◆ 쌓인 발걸음, 전문성

 

공군 장교가 된 후에도 야구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였다. 근무지가 수도권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 야구장을 찾았다. 나름의 관전평도 쓰고, 아마추어 유망주들을 분석하기도 했다. 제대하기 1년 전이었을까. LG에서 제의가 왔다. 1997년 정식 입사를 하게 된다. 류 전 단장는 “그때 LG가 뚝섬 돔구장을 지으려 했었다. 처음엔 그쪽 관련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막상 입사하려하니 운영 팀으로 설명을 하더니, 직전에 홍보팀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사람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했던가. 그렇게 LG 외길을 걷는 듯하다, 갑작스레 퇴사를 결정했다. 좀 더 큰 무대를 경험하고 싶었다. 류 전 단장는 “MBA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 공부를 했다. 영어가 안 되더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때마침 SK에서 손을 내밀었다. 해보고 싶었던 구단 마케팅 일도, 미국 연수도 약속받았다. 류 전 단장은 “재밌는 게 영입을 제안해준 팀장님이 마케팅-홍보팀장이었다. 들어가니 또 홍보 일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사진=김용학 기자/ 류선규 전 SSG 단장
사진=김용학 기자/ 류선규 전 SSG 단장

 

◆ 꿈을 이룬, 우승

 

LG가 꿈을 꾸게 해준 구단이라면, SK는 꿈을 이룬 곳이었다. (SSG까지) 5개의 우승반지를 꼈다. SSG로 인수된 후에도 정상을 밟았다. 단장에까지 올라 2022시즌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wire-to-wire·개막부터 끝까지 1위를 놓치지 않는 것)’ 우승까지 일궜다. ‘SK서 LG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땠느냐’는 질문에 류 전 단장은 “마치 전 여자 친구를 보는 느낌인 듯하다. 신경이 쓰이는데, 또 나보다 잘되길 바라진 않았다”고 솔직히 답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2007년, SK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던 순간이다. 류 전 단장은 개인적으로도 처음 끼는 반지였다. 신인 김광현이 상대 에이스 다니엘 리오스(당시 두산)를 상대로 패기 넘치는 피칭을 펼친 일부터 벤치클리어링 등 지금도 생생하다. 류 전 단장는 “홈에서 1,2차전을 다 졌다. 이번에도 우승 못하는구나 싶더라”면서 “당시 마케팅 팀이었는데, 준비했던 것들을 날릴 위기였다. 사람 없는 데에 가서 혼자 엄청 울었다”고 밝혔다.

 

사진=SSG랜더스 제공/ 류선규 전 SSG 단장
사진=SSG랜더스 제공/ 류선규 전 SSG 단장

 

◆ 좀 더 넓게, 도전

 

2022년 12월, SSG를 떠났다. 한동안 야구를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서 편안하게 쉬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다른 쪽에 포커스를 맞췄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공인중개사, 에이전시 자격증 등을 땄다. 류 전 단장은 “무엇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이 나이에 다시 공부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살도 좀 빼보려고 헬스장에 등록했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깐 너무 지루하더라. 그건 실패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시 야구라는 두 글자를 접하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나둘 주변에서 제의가 왔다. 돌이켜보면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SK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PD로부터 SNS 제안이 들어왔고, SK 시절 스포테인먼트를 진행했던 것이 계기가 돼 ‘야구 수학’ 책을 쓰게 됐다. 다만,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과 달리 방송 등은 생소한 경험이었다. 류 전 단장은 “성격 자체가 대충하는 걸 싫어한다. 일단 한다고 했으면 잘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끄덕였다.

 

아직도 꿈을 꾼다. 류 전 단장은 여전히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자 한다. “대학원에 도전하려 한다. 스포츠 애널리틱스를 연구하고 싶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가려 한다. 류 전 단장은 “구단에서 나온 뒤 야구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야구계에 도움이 됐으면 좋다. 강의를 다니다 보면, 학생들이 정말 야구에 관심이 많다. 질문도 수준이 높더라”면서 “그들이 미래에 야구를 이끌 인재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밝혔다.

 

사진=김용학 기자/ 류선규 전 SSG 단장
사진=김용학 기자/ 류선규 전 SSG 단장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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