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상상력 괴물’ 연상호가 던진 기괴한 거울 ‘군체’

연상호가 연상호 했다. 좀비물 마니아라고 자부하는 기자도 이런 좀비 영화는 처음이다.

 

댓글 하나에 우루루 몰려가는 지금, 고도화된 집단 지성의 시스템에서 개인의 온전한 사유는 안전한가? 영화 ‘군체’는 이 현대적인 의문부호에서 출발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아포칼립스의 풍경을 완성해 낸다.

 

‘부산행’이 달리는 열차라는 공간 속 인간 군상을, ‘반도’가 폐허가 된 국가의 황량함을 담았다면,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는 마침내 좀비라는 존재의 본질과 집단적 진화 그 자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칸영화제가 왜 이 작품을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지, 영화는 좀비의 등장부터 온몸으로 증명한다.

 

◆감염이 주는 공포…처음보는 좀비들

 

정체불명의 감염사태로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초고층 빌딩. 그곳에 고립된 생존자들이 마주하는 존재는 우리가 흔히 알던 느릿하거나 맹목적으로 뛰기만 하는 좀비가 아니다. ‘군체’의 감염자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학습하며, 생존자들의 행동 패턴을 모방해 공격 방식을 ‘업데이트’한다.

 

영화 속에서 감염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젖힌 채 온몸을 파르르 떠는 전율의 순간은, 마치 거대한 서버에 접속해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는 디바이스들을 연상시킨다. 전영 안무감독과 국내 정상급 현대 무용수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시그니처 모션은 경이롭다 못해 소름이 돋는다.

 

관절을 비틀며 네발로 기어오르다 이내 두 발로 서서 인간을 비웃듯 달려드는 그들의 움직임은 가상의 컴퓨터 그래픽(VFX)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육체적 질감과 생생한 공포를 뿜어낸다. 수십, 수백 명의 감염자가 하나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정교하게 엉켜 붙어 내달린다. 이때 화면은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세포들을 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전지현→구교환, 찰떡 캐스팅이 주는 몰입

 

이 아비규환의 지옥도 안에서 영화의 중심을 잡는 것은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전지현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그녀가 연기한 생명공학자 권세정은 극한의 재앙 앞에서도 결코 이성과 정의를 잃지 않는 인물이다. 전지현은 흔들리는 생존자 그룹을 이끄는 냉철한 리더십부터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복합적인 내면의 슬픔까지 완벽한 스펙트럼으로 소화해 내며 왜 대체 불가능한 배우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전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백신입니다”라며 광기 어린 여유를 부리는 천재 생물학자 서영철 역의 구교환은 극의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팽팽하게 당기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온몸에 핏빛 가득한 사투를 벌이는 최현석(지창욱)의 처절한 질주, 빌딩 외부에서 사태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공설희(신현빈),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손을 내밀 줄 아는 최현희(김신록), 그리고 전처 세정의 정의에 감화되어 위험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한규성(고수)까지. 여섯 인물의 앙상블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린다. 

 

◆이 맛에 극장 간다…연상호가 만든 ‘스크린 체험’

 

연상호 감독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베테랑 스태프들의 시너지가 빛난다. 장르 영화의 쫄깃함을 넘어 극장이 주는 체험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목원 미술감독이 설계한 리얼한 대규모 빌딩 세트는 CG 사용을 최소화하여 공간이 주는 폐쇄 공포를 극대화한다. 변봉선 촬영감독의 카메라 역시 고정된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직접 카메라를 들고 움직이는 핸드헬드 기법을 적극 활용해 인물들의 거친 흐름 속에 관객을 직접 동참시킨다. 여기에 감염자들의 외형을 창조한 황효균 대표의 특수분장팀 CELL과 허명행 무술감독이 빚어낸 타격감 넘치는 액션은 매 순간 오감을 깨우는 현장감을 불어넣는다.

 

‘군체’를 볼 이유는 심플하다. 상상하지 못한 그림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재밌다. 이기적인 개인들이 서로를 불신하며 분열될 때, 역설적으로 완벽하게 결속된 감염자 집단(군체)에게 차례로 사냥당하는 모습은 사이다 인과응보를 보여준다.

 

‘군체’는 직관적이고 밀도 높은 서스펜스로 관객을 사로잡는 동시에,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집단성에 매몰되어 개별성을 잃어버린 감염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고도화된 소통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아닐까.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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