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호프(HOPE)는 칸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수 있을까.
제79회 칸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이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지난 18일, 올해 경쟁 부문에 초청된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기 때문이다.
2시간4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숨 막히게 몰아붙인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 객석에서는 환호와 함께 7분간의 뜨거운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거장들의 작가주의 영화가 주류를 이루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순제작비 700억 원 규모의 SF 액션 스릴러가 이토록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풍경이다. 이에 따라 한국 영화계와 현지 언론의 시선은 경쟁 부문 수상 여부에 쏠리고 있다.
영화 호프는 외딴 소도시 호포를 배경으로 마을 외곽에 의문의 괴생명체가 출현하면서 벌어지는 사투를 그린다. 미지의 존재를 추적하는 경찰 범석(황정민)과 사냥꾼 성기(조인성)의 추적극이 서사의 중심축이다. 나 감독은 전작 곡성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이 대작을 통해 괴물 영화를 넘어선 시각적 충격과 팽팽한 서스펜션을 선사한다.
월드 프리미어 직후 외신들은 찬사를 쏟아냈다. 프랑스 매체 프리미어(Première)는 “장르적 규칙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나홍진 감독만의 예측 불가능한 터치가 가미되어 신선함을 준다”라며 감독의 진화된 연출력을 극찬했다. 르 몽드(Le Monde) 역시 “칸의 전형적인 문법을 파괴하는 시각적 충격을 선사하며 장르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했고, 르 누벨 옵스는 “올해 칸영화제를 뒤흔든 지진 같은 작품”이라며 영화가 지닌 파격성에 주목했다.
하지만 불호 반응도 존재한다. 홍콩 매체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어설픈 설정과 조악한 CG”라고 혹평하는 등 후반부 전개와 크리처 컴퓨터그래픽(CG)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칸의 전통적인 색채와 어긋나는 지나친 상업성”을 지적했다.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현지의 시선은 오히려 이 영화가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작이자 화제작임을 반증한다.
나 감독은 현지 기자회견을 통해 “범죄와 폭력, 사회적 문제가 왜 발생하나 고민했다. 인간 안에서 이유를 못 찾아 곡성에서는 신과 초자연 등 종교적 차원으로 갔고 이번엔 우주까지 가게 됐다”며 “뉴스나 국제 정세를 보면 전 세계가 불안하고, 엄청난 폭력이 무자비하게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 같은 불길함이 있었다. 전쟁 발발 이야기도 나오던 시기였다. 그런 감각이 시나리오의 바탕이 됐다”라고 작품 기획 의도를 전했다.
나 감독은 “미스터리가 계속 전진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부터 미스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는 딴짓과 딴소리를 하면서 그걸 방해한다. 관객이 미스터리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너무 착하고 단순한 구조가 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상한 장면들도 끼워 넣었다”라고 설명했다.
황금종려상 수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수상은 생각도 않는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보고 나니 편집을 다시 손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 아직 완성이라고 말하기엔 그렇다”고 전해 여름 개봉 전까지 완벽을 기할 것임을 강조했다.
배우 황정민은 “나 감독은 미학적으로 매우 치밀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그 집요함이 결국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된다”라고, 조인성은 “시나리오에서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어떻게 구현하는나는 다른 문제다. 나홍진 감독은 그것을 구현하는 사람”이라며 감독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수상 결과를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지만, 현지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특히 올해 경쟁부문에 초청된 22편 가운데 일본 영화만 무려 세 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상자 속의 양,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올 오브 어 서든(All of a Sudden), 그리고 후카다 고지 감독의 나기 노트 등 일본 영화들의 기세가 매섭다. 이러한 치열한 경합 속에서도 호프가 현지 평론가와 언론으로부터 눈길을 끌며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장르 영화에 다소 엄격했던 칸 심사위원단이 나 감독이 구축한 이 독창적인 SF 스릴러의 예술성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최종 방점을 찍을 변수다.
현지에서는 황금종려상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연출력에 주어지는 감독상, 혹은 극을 압도적으로 이끌어간 배우들의 주연상 등 주요 7개 본상 부문 중 어느 하나라도 거머쥘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다. 뤼미에르 대극장을 뒤흔든 7분간의 기립박수가 황금빛 영광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전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운명의 최종 수상 결과는 오는 24일 발표된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