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아의 연예It수다] 이중 정체성, ‘한국계’라는 수식어를 넘어

파친코 스틸컷
파친코 스틸컷

한때 ‘한국계’라는 수식어는 경계인의 어정쩡한 위치를 뜻했다. 한국에서는 낯선 이방인으로, 해외에서는 아시아계라는 틀 안에서 읽히며 장점보다 결핍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 콘텐츠 산업은 이러한 이중 정체성에 주목하고 있다.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는 정체성이 오히려 복수의 문화권을 동시에 이해하는 확장된 능력으로 재평가받는 추세다.

 

최근 글로벌 흥행작들은 이러한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는 한국 음식과 K-팝, 전통문화를 이색 소재로 소비하지 않고 이야기의 원동력으로 녹여냈다. 드라마 파친코(2022·2024)는 이주와 차별이라는 특수한 역사에서 출발해 인류 보편의 가족사로 확장을 이뤘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2024) 역시 인연이라는 한국 특유의 개념을 활용해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남녀의 미묘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들 작품에서 ‘한국적인 것’은 세계 관객이 즉각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보편적 재료로 기능한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물론 이중 정체성이 기회만을 뜻하진 않는다. 한국계 창작자들은 종종 개인의 역량을 넘어 집단의 대표성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강요받는다. 성공하면 다양성의 상징이 되지만, 실패하면 집단 전체의 한계로 비쳐지는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넷플릭스나 애플TV+ 등 글로벌 플랫폼 시대에는 단일 문화권만을 겨냥한 작품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다양성은 제작 초기부터 고려해야 할 필수 요소이자 산업의 생존 전략이다. 한국적 배경과 글로벌 감각을 동시에 갖춘 인재들은 복잡한 문화적 맥락을 장르와 언어로 치환하는 데 독보적인 강점을 지닌다.

 

여기에 대해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복합 문화 창작자들의 역할이 향후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박송아 대중문화평론가는 “여러 문화권의 관객을 동시에 설득해야 하는 플랫폼 시대에는 다양성이 곧 글로벌 경쟁력”이라며, “복수의 문화 경험을 가진 창작자들은 단순한 소재 차용을 넘어 문화적 맥락을 정확히 번역해내는 대체 불가능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친코2 스틸컷
파친코2 스틸컷

이에 따라 한국(Korea)을 뜻하는 K의 개념도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K-콘텐츠가 국내에서 완성된 작품의 수출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세계 각국의 제작 현장에 이식된 한국적 경험과 감각까지 포함한다. 세계화란 본래의 색을 지우는 과정이 아니다. 자신의 다층적 정체성을 글로벌 문법으로 번역해내는 역량에 가깝다. 이중 정체성은 이제 어정쩡한 경계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잇고, 낯선 정서를 보편의 언어로 바꾸는 글로벌 콘텐츠 비즈니스의 핵심 동력이 됐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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