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에게 고마운 맘이 큽니다.”
‘스타는 명장이 될 수 없다.’ 스포츠계에 널리 퍼진 명제 중 하나다. 현역 시절 리그를 지배했던 레전드라고 할지라도 지도자로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본인에겐 너무나 당연했던 플레이들을 제자들에게 심는 과정서 소통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상민 KCC 감독이 마주했던 벽이기도 하다. 편견 속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싸늘한 시선 속에서 크나큰 압박감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이겨냈다는 점이다. 자신의 커리어에 ‘우승 감독’ 네 글자를 새겼다. 13일 소노와의 챔피언결정 5차전서 76-68 승리를 거뒀다.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마침내 왕좌에 올랐다. 선수, 코치, 감독서 모두 정상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역대 4번째. 그것도 모두 한 팀에서 기록한 것은 이 감독이 KBL 역대 처음이다.
‘천재 가드’ 출신이다. 1995년 현대전자(KCC 전신)에 입단, 2007년 삼성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줄곧 하나의 유니폼을 입었다. 특유의 날카로운 패스와 정확도 높은 공격으로 코트 위를 장악했다. 3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1997~1999, 2003~2004시즌)을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감독의 등 번호 11번은 KCC 영구결번으로 남아 있다. 뜨거운 인기를 자랑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올스타 인기투표서 9시즌 연속 1위를 자랑했다.
지도자의 길은 달랐다. 다사다난했다. 코치를 거쳐 2014~2015시즌 삼성 지휘봉을 들었다. 감독 부임 첫해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이듬해 6강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에 오른 데 이어 2016~2017시즌엔 챔프전(준우승)에까지 진출하며 상승세를 걷는 듯했다. 현실은 달랐다. 이후 암흑기가 펼쳐졌다. 2020~2021시즌까지 봄 농구 문을 열지 못했다. 이 기간 꼴찌만 두 번. 2021~2022시즌 도중 자진 사퇴했다. 이 감독이 스스로 “실패한 감독”이라 표했던 배경이다.
다시, 기회가 왔다. 올 시즌을 앞두고 KCC 사령탑에 올랐다. 이 감독은 “농구 인생 마지막 목표는 우승 감독”이라고 강조했다. 쉽지 않았다. KCC는 ‘슈퍼 팀’이라 불리는 팀이다.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난 것은 기본, 뚜렷한 색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하나의 팀으로, 조화롭게 묶는 게 관건이었다. 이 감독은 “우리가 잘 안 풀릴 때를 보면 각자 개인플레이에 집중하고 있더라. 선수들이 자기 포지션에 맞게 움직여주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귀’를 열었다. 감독으로서의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경청의 자세로 임했다. 작전 타임 시간 선수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감독은 “모두가 다 자신의 이야기만 해서는 나아갈 수 없지 않느냐”면서 “경기를 치르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직접 뛰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 했다”고 말했다. 수장의 배려를 선수들이 모를 리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서로의 퍼즐을 맞춰가면서 마침내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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