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대중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정윤민의 기이한 AI ‘경각심’

사진 설명=정윤민이 지난 9일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피트를 만났다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는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이미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설명=정윤민이 지난 9일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피트를 만났다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는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이미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 현장을 다니며 수많은 가짜를 봤다. 악의적인 루머부터 정교하게 편집된 영상까지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 시도는 늘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배우 정윤민이 보여준 일명 AI 브래드 피트 소동은 차원이 다른 불쾌감을 남긴다. 진정성 없는 해명과 그 가짜 뉴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미디어의 민낯이 동시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각심’이라는 변명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일 정윤민이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이었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와 어깨동무를 한 사진이다. “북촌 골목길에서 빵형을 만나다니”라는 문구를 덧붙이며 마치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묘사했다. 여기에 일부 매체는 사실 확인 없이 정윤민의 글을 제목으로 뽑으며 혼란을 키웠다.

 

진짜 문제는 가짜임이 밝혀진 이후의 태도다. 논란이 커지자 정윤민은 11일 “실존 인물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무서워 경각심을 가지자는 마음으로 공유한 것”이라며 “기사까지 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니 정말 놀라운 시대인 것 같다. 다들 가짜 사진에 속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이라고 전했다.

 

해괴망측한 논리다. 위험성을 경고하고 싶었다면 게시물에 ‘AI 생성’ 표기를 하거나 워터마크를 넣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정윤민은 지인이 댓글로 진위를 물을 때도 묵묵부답으로 응했다.

 

경고가 아니라 기만이다. AI 생성물에 대한 표기 의무가 강화되고 있는 요즘이다. 본인이 가짜 뉴스의 출처가 되어 혼란을 야기해 놓고, 이제 와서 대중에게 “무서운 세상이니 조심하라”고 훈계하는 모습에서 실소가 나온다. 

 

이후에도 해당 사진이 논란이 되자 정윤민은 “가장 황당한 건, 제가 기사를 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제 피드를 무단으로 퍼가서 기사화한 건 기자들”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딥페이크, 축복과 재앙 사이의 줄타기

 

이번 사건은 AI 기술이 던지는 윤리적 문제를 보여준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가수를 소환하고 배우의 젊은 시절을 복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은 분명 축복이나 이면에는 상표권 및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정윤민이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허락 없이 AI 이미지에 사용한 행위는 권리 침해다. 글로벌 스타의 초상을 한국 배우가 개인 공간에서 소비하는 과정 중 그 어떤 고찰도 없었다는 점은 뼈아프다. 연예계는 신뢰를 먹고 사는 산업이다. 그러나 AI 조작이 가볍게 면죄부를 얻기 시작하면 산업의 근간인 신뢰는 무너진다. 이제는 우리 연예계도 AI 생성물 표기 의무화 등 엄격한 윤리적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한다.

 

◆언론, 가짜를 전달한 확성기

 

이번 해프닝이 커진 데에는 일부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황당 해명을 내놓은 정윤민의 SNS 사진 한 장에 낚여 사실 확인도 없이 속보를 쏟아낸 것은 반성해야 한다. 클릭 수에 매몰되어 게시물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가짜 뉴스 확산의 확성기 역할을 했다.

 

기자는 의심하는 직업이다. 할리우드 스타가 공식 일정 없이 나타났다면 적어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AI가 기사도 쓰는 세상에서 기자의 유일한 생존 전략은 검증이다. 

 

◆마지막 SNS 글까지…실시간으로 중계된 ‘돌아보기’ 부재 

 

정윤민의 글이 계속 기사화 되고, 업계의 싸늘한 반응을 얻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의 논리가 전형적인 ‘궤변’의 틀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목적과 수단의 전도다. 진정으로 AI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싶었다면, 사진을 올리는 순간 “이게 진짜 같죠? 하지만 AI입니다. 조심하세요” 류의 주의사항을 병기했어야 옳다. 가짜 뉴스를 유포해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뒤늦게 경고를 운운하는 것은 “칼이 위험하다는 걸 알려주려고 사람을 찔러봤다”는 황당한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차라리 누군가를 속일 의도가 없었음을 밝히는 것이 더 진실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정윤민은 이번 사건으로 AI의 위험성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의도는 성공했다. 스스로가 가장 나쁜 사례가 되어 무책임한 배우와 안일한 미디어가 만났을 때 세상이 얼마나 허망하게 이슈를 다루는지 몸소 증명했으니 말이다.

 

브래드 피트는 북촌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연예계와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 역시 이번 사건으로 또 한 발짝 더 멀어졌다. 우리는 기술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기술 뒤에 숨은 우리의 나태함과 비겁함을 두려워해야 한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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