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사라지던 때, 코미디언에게 방송국은 유일한 일터였다. 매주 엄격한 검열을 거쳐 얌전한 웃음만 제조해야 했던 이들에게 무대가 없어진다는 것은 코미디언으로서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 절벽 끝에서 스스로 날개를 펴고 야생으로 뛰어든 이들이 있다. ‘말자할매’로 제2의 전성기를 일궈낸 김영희와 한국인 최초로 미주 스탠드업 투어라는 대기록을 쓴 김동하다.
현재 이들의 뜨거운 인기는 결코 운이 아니다. 방송국 스튜디오의 불이 꺼졌을 때, 두 사람은 지인의 사무실에서 팟캐스트 녹음을 하며, 작은 무대 위에 오르며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얻는다.’ 누군가에겐 고루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김영희와 김동하의 모습을 보면 이 말 외엔 떠오르지 않는다. 더불어 한국 코미디의 주도권이 방송사 시스템에서 아티스트 개인과 라이브 무대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육성사이다…거친 실험실이 만든 괴물들
두 사람의 인연은 잘 숙성된 와인같다. 그 중 팟캐스트 육성사이다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출연 기회가 전무했던 암흑기, 김영희와 김동하는 매주 팟캐스트라는 보이지 않는 무대 위에 올랐다. 당시 이들에게 팟캐스트는 수익 모델이라기보다 코미디언으로서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이 시기는 두 사람에게 날것의 언어를 몸소 체득하게 한 계기가 됐다. 방송 심의도, 관객의 즉각적인 리액션도 없는 공간에서 오로지 ‘입담’ 하나로 청취자를 붙들어야 했던 경험은 고도의 순발력과 코미디의 기승전결을 만드는 혹독한 훈련이 됐다.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유머의 타격감을 조율했던 음지의 시간이 지금 무대를 휘어잡는 독보적인 구력의 자양분이 된 셈이다.
◆날것의 유머가 주류를 집어삼키다
대중이 김영희의 호통을 시청률 1위로 만들고 김동하의 농담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정제되지 않은 진정성에 있다. 팟캐스트와 라이브 무대에서 단련된 두 사람의 코미디는 자기 고백적이며 발칙하다.
김영희는 ‘말자할매’라는 캐릭터 뒤에 숨지 않고 관객의 고민에 날카로운 직설을 꽂는다. 세련된 위로보다 투박한 호통이 더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팟캐스트 시절부터 다져온 사람 냄새 나는 소통의 내공 덕분이다.
특히 김영희의 선행은 인상 깊다. 국민적 시름이 깊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김영희는 예비부부들의 간절한 사연을 직접 읽으며 전국 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회비는 전액 무료. 지금처럼 언론이 주목하지 않아도 매달 수 차례씩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결혼식을 찾아가 재능기부로 그 자리를 빛냈다.
이 경험은 김영희에게 선행 이상의 가치를 남겼다. 전국 팔도를 누비며 만난 다양한 세대와 성별, 그리고 각계각층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그의 데이터베이스가 된 것이다. 기쁜 날의 긴장감부터 가족 간의 미묘한 감정선까지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익힌 공감 능력은, 지금 그가 말자할매로서 남녀노소 누구의 사연을 들어도 단숨에 핵심을 짚어내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김동하 역시 마찬가지다. 전직 국어 교사라는 반전 이력을 무기 삼아 일상의 풍자와 해학을 ‘선을 넘을 듯 말듯’ 기막히게 조율한다. 이제 MZ세대는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뻔한 콩트에 만족하지 않는다. 코미디언의 본능이 살아 숨 쉬는 고통과 예상치 못한 애드리브가 주는 해방감을 소비한다. 비주류 플랫폼의 문법이 어느새 가장 세련된 주류 코미디의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해…압도적 티켓 파워
산업적 측면에서 이들의 행보는 더욱 든든하다. 김동하는 전국 14개 도시 투어를 넘어 북미 투어까지 성공시켰고, 공연 실황은 CGV에서 정식 개봉됐다. 수천 명의 관객을 공연장과 극장으로 불러들인 것은 코미디도 아이돌 공연이나 뮤지컬처럼 유료 티켓의 가치를 지닌 콘텐츠임을 입증한 사건이다.
김영희 또한 말자할매 공연을 통해 관객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이며 강력한 오프라인 팬덤을 구축했다. 이는 방송국이 광고 수익을 위해 코미디를 활용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경제 모델이다. SNS로 팬덤을 모으고(온라인), 이를 실제 티켓 판매로 전환하는(오프라인) 선순환 구조를 두 사람이 완성했다. 이제 코미디언은 선택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무대를 기획하고 관객을 찾아가는 공연 기획자로 진화한 것이다.
◆‘버티는 것’이 아니라 ‘닦는 것’이 이긴다
두 사람의 성공은 후배들에게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방송 무대가 없어서 웃길 수 없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김동하는 70석 작은 공연장에서 ‘인맥 영끌’로 시작해 세계 무대로 나아갔고, 김영희는 가장 낮은 곳에서 관객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정점에 섰다.
이들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무대 감각의 연속성이다.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없던 시절에도 매주 농담을 수련했던 그 지독한 집요함이 지금의 압도적인 아우라를 만들었다.
단순히 오래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은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진리를 몸소 증명해 보인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어 농담으로 북미를 홀린 김동하와, 안방극장을 넘어 공연장을 웃음과 눈물로 채우는 김영희. 두 사람은 이제 개그맨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시대의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아티스트로 우뚝 섰다.
마이크 하나로 시작된 이들의 반란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새로운 질서가 됐다. 온실을 벗어나 야생에서 자란 꽃이 가장 향기롭듯, 맨바닥에서 단련된 이들의 웃음은 그 어떤 대본보다 힘이 세다.
오는 6월부터 재개될 김동하의 투어와 김영희의 끊임없는 변신이 기대되는 이유는, 이들이 개척한 길이 곧 한국 코미디가 나아갈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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