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을 항해하던 네덜란드 크루즈선 ‘MV 혼디우스’에서 한타바이러스 감염증 집단 사례가 발생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사에 나섰다. 각국 보건당국 발표를 종합하면 사망자는 네덜란드인 부부와 독일인 1명 등 총 3명이다. 영국 국적 승객 1명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감염 경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첫 환자가 승선 전 남미 지역을 여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행 중 설치류 분변에 오염된 환경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남미에서는 한타바이러스의 일종인 안데스 바이러스 감염증이 드물게 발생한다. 이번 사례에서 확인된 안데스 바이러스는 한타바이러스 중에서도 사람 간 전파가 제한적으로 보고된 유형이다.
◆한국서 처음 규명된 한타바이러스… 설치류 분비물이 주요 감염원
한타바이러스 자체는 낯선 신종 바이러스가 아니다. 정희진 고려대 의대 백신혁신센터장에 따르면 한타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감염된 설치류의 소변, 분변, 타액에 노출될 때 전파된다. 숲, 들판, 농장, 헛간, 창고, 야외 캠핑지처럼 설치류가 서식하기 쉬운 공간에서 노출 위험이 커진다.
이는 특히 한국과 관련이 깊다. 고(故)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가 1976년 한탄강 유역 등줄쥐에서 유행성출혈열의 원인 병원체를 처음 규명했다. 이 병원체는 한탄강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로 명명됐다. 이후 유사한 계열의 바이러스가 추가로 발견되면서 이들 전체를 묶어 ‘한타바이러스’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타바이러스는 지역과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임상 양상이 다르다. 정 센터장에 따르면 아시아와 유럽에서는 주로 신장을 침범하는 ‘신증후군출혈열’ 형태로 나타나고 북남미에서는 폐와 심혈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는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 또는 ‘심폐증후군’ 형태가 문제가 된다.
그는 “한타바이러스 감염증은 초기에는 감기와 유사해 인식이 어렵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빠르게 중증으로 진행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국제 이동이 활발한 상황에서는 해외 감염병 유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사람 간 전파가 제한적인 만큼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이어 “감염된 설치류의 분비물에 오염된 환경에 대한 노출 위험은 특정하기 매우 어렵지만 설치류가 많이 서식하는 숲, 들판, 농장 등에서 활동한 뒤 발열 등 증상이 있는 경우 의심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초기엔 감기처럼 시작… 일부는 호흡곤란·신부전으로 악화
증상은 초기에는 감기나 몸살과 비슷하다. 발열, 두통, 근육통, 오한, 어지럼, 복통, 구토, 설사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환자는 이후 호흡곤란, 저혈압, 폐부종, 쇼크 또는 급성 신부전으로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일반적인 잠복기는 1~2주로 알려져 있으며 최대 6주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질환의 중증도는 바이러스 종류와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발생하는 신증후군출혈열, 북남미 지역의 폐증후군 모두 중등증 이상의 위중도를 보일 수 있다. 특히 폐증후군은 치명률이 높은 감염증으로 꼽힌다.
현재까지 특이적인 항바이러스 치료제는 없으며 산소 치료 등 조기 보조치료와 중환자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에서의 진료가 예후 개선에 중요하다.
◆크루즈선 감염병 관리 어렵지만… 코로나19식 확산과는 달라
크루즈선은 감염병 관리가 까다로운 환경이다. 객실, 식당, 라운지, 복도, 의료실 등 제한된 공간을 많은 사람이 장기간 함께 사용한다. 승객과 승무원의 국적이 다양하고 항해 중 여러 국가를 거치기 때문에 하선 이후 접촉자 추적도 복잡해진다.
다만 이번 사례를 노로바이러스나 코로나19처럼 공용 공간에서 빠르게 번진 감염병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타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설치류 매개 감염병이기 때문이다. 안데스 바이러스처럼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예외가 있더라도 객실을 함께 쓰거나 간병을 하는 등 장시간 밀접 접촉이 있었을 때 제한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큰 관심은 이번 사례가 코로나19처럼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느냐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다는 게 WHO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WHO는 이번 사안을 조사하면서도 전반적인 공중보건 위험은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도 현 상황이 코로나19 초기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차이는 전파 방식에 있다. 코로나19는 호흡기를 통해 사람 간 전파가 쉽게 일어나 대규모 지역사회 확산으로 이어졌다. 반면 한타바이러스는 감염 설치류와 관련된 환경 노출이 핵심이다.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안데스 바이러스도 객실 공유나 간병처럼 매우 가까운 접촉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보고되는 수준이다. 따라서 대중교통, 식당, 일상 접촉만으로 광범위하게 퍼질 가능성은 낮게 평가된다.
◆국내도 한타바이러스 유행 지역…고위험군 주의 필요
국내에서도 한타바이러스 감염증은 여전히 관리 대상이다. 정 센터장은 “과거보다 발생은 줄었지만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와 함께 신증후군출혈열 등 한타바이러스 유행 지역에 속한다”며 “군인, 농업 종사자, 야외활동이 많은 사람처럼 설치류 배설물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집단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국내에서는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한타바이러스 백신도 사용돼 왔다. 다만 현재 사용 중인 백신은 접종 일정이 복잡하고 지속력이 짧다는 한계가 있다. 또 남미의 안데스 바이러스에 의한 폐증후군까지 폭넓게 예방할 수 있는 범용 백신은 아직 충분하지 않아 차세대 백신 개발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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