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의 장기 침체 속에서 국내 멀티플렉스가 VR 콘텐츠를 새로운 돌파구로 낙점했다. 극장은 더 이상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팬덤 화력이 보장된 아이돌과의 협업을 통해 ‘VR 콘서트 성지’로 빠르게 변모하는 중이다.
◆멀티플렉스 3사, VR 콘서트에 사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급부상과 관람료 상승으로 침체에 빠진 국내 극장가는 최근 아이돌 팬덤을 등에 업고 돌파구를 찾고 있다. 아이돌 가수와의 협업을 통해 VR 콘서트, 단독 이벤트, 한정판 굿즈 판매 등을 연계하며 극장을 팬덤이 모이는 성지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단순한 관객 점유율 확대를 넘어 극장의 공간적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4세대 간판 걸그룹 르세라핌의 VR 콘서트를 지난 15일부터 단독 상영하고 있는 롯데시네마는 최대 지점인 월드타워점 3관을 아예 르세라핌 VR 전용 상영관으로 전환해 운영 중이다. 국내 첫 멀티플렉스 VR 전용관 사례다.
VR 콘서트 사상 최초로 공식 굿즈도 극장 내에서 단독 출시했다. 상영 기간 극장 내 매점에서는 뷰파인더, 렌티큘러 포토카드팩 등 공식 굿즈를 판매하며 관람객을 대상으로 기본 특전과 매주 변경되는 주차별 특전을 선착순으로 지급하는 이벤트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는 극장 공간 자체를 콘텐츠로 전환한 시도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전용 상영관을 마련해 공간 전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도록 기획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영화 상영관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 컬처스퀘어로 전환하겠다는 복안이다.
멀티플렉스가 VR 기술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단순한 대안 콘텐츠 확보를 넘어 극장이라는 오프라인 플랫폼의 희소성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집에서도 고화질로 즐길 수 있는 OTT 콘텐츠와 달리 VR은 장비와 전용 상영 환경이 중요하다. OTT로는 구현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몰입감과 팬 참여형 경험을 극장만의 강점으로 내세운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VR콘서트는 상영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정판 굿즈 판매 등 소위 N차 소비를 유발한다. 극장이 영화 관람료에만 의존하던 기존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콘텐츠 비즈니스 거점으로 거듭날 기회 중 하나”라고 짚었다.
◆영화 넘어 공연·스포츠 팬덤으로 확장
VR 콘서트를 중심으로 한 팬덤 공략은 멀티플렉스의 전방위적 변신과 맞닿아 있다. 롯데시네마는 오는 5월 관객 참여형 공연 브랜드 인사이드 더 플레이를 론칭하고, 메가박스는 성수동에 복합문화공간 메타그라운드를 조성해 미디어아트 전시·팝업스토어를 유치하고 있다. CGV는 실내 클라이밍짐 운영과 함께 2024년부터 프로야구 정규시즌 생중계에 나섰다.
멀티플렉스의 이같은 변화는 영화 관람객 중심이던 극장 이용층을 음악·공연·스포츠 등의 팬덤으로 넓히려는 시도다. 영화를 보는 관객 수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장점을 활용해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려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전국 극장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관 수는 547개로 전년보다 4.0%(23개) 줄었다.
멀티플렉스의 다양한 시도는 위기에 빠진 극장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화관이 영화만 보는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체험 공간으로 바뀌지 않으면 어렵다. 극장에서만 줄 수 있는 다른 경험을 줘야 한다. 앞으로 멀티플렉스의 이런 시도가 더 많아질 것이고 극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조금씩 변화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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