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문은 닫히고, 익숙한 풍경도 사라진다. 누군가에겐 가장 찬란한 우승의 무대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승부처였던 잠실이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하지만 그 안에 쌓인 희로애락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체육계의 공통된 시선이다.
잠실야구장은 프로야구에서 수많은 전설을 빚어낸 공간이다. ‘국민 감독’ 김인식 전 감독에게도 이곳은 특별한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는 “동대문야구장밖에 없던 시절, 그렇게 큰 구장이 생겼다는 게 놀라웠다. 크기부터 남달랐다”고 돌아봤다.
수만 명의 팬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처음 잠실을 마주했던 순간의 충격만으로도, 이 구장이 한국 야구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 전 감독에게 잠실은 무엇보다 우승의 기억이 짙게 남은 무대다. 1995년 가을이 대표적이다. 항명 파동으로 어수선했던 팀을 추슬러 정상에 올랐던 그해, 잠실은 감독에게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든 공간이었다. 그는 당시 잠실 감독실에 홀로 앉아 숱한 고민을 거듭했던 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렸다.
그해 한국시리즈 7경기 중 5경기가 열린 잠실은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승부의 한복판이었다. 김 전 감독은 특히 7차전 마지막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마무리로 나선 권명철 두산 잔류·재활군 코치가 투수 앞 땅볼을 침착하게 처리해 1루로 연결했고, 그 공 하나로 우승이 확정됐다.
앞서 경기 도중 비슷한 장면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던 터라, 관중석에서도 순간적으로 탄성이 흘러나올 만큼 아슬아슬했던 순간이었다는 설명이다. 김 전 감독은 “다행이었다 싶더라. 관중석부터 쳐다보니 같은 생각들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도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다. 손에 땀이 끊이질 않았다”고 돌아봤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프리미어12 등 국가대표 감독으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그이지만, 잠실은 또 다른 결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김 전 감독은 한국 팬들의 응원을 가장 가까이서 체감할 수 있었던 장소로 역시 잠실을 꼽았다. 관중과 함께 호흡하고, 함성과 열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잠실의 시간은 그래서 더 짙게 새겨져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잠실 야구장이 허물어지더라도 좋았던 추억들은 그 당시에도, 지금 현재도, 앞으로도 평생 잊을 수 없을 듯싶다. 프로야구 팬들께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구인들에게도 잠실은 추억이 한가득 쌓인 장소다. 지난 1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마지막 남자프로농구(KBL) 올스타전이 유독 각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장에서 만난 KBL 관계자는 “오늘 여기 온 사람들 중 잠실과 인연, 추억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잠실이 한국 농구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장소였다는 의미다.
조상현 LG 감독에게 잠실은 대학 시절 뜨거웠던 기억을 품은 무대다. 연세대 신입생이던 1995년 정기 연고전에서 팀은 87-92로 졌지만, 그는 전희철, 양희승, 현주엽, 김병철 등이 버틴 고려대를 상대로 홀로 33점을 쏟아냈다. 조 감독은 “이곳 잠실에서 많은 팀들과 치열하게 맞붙었던 기억이 많다”며 미소 지었다.
올 시즌 현대모비스서 현역 생활의 마침표를 찍은 함지훈은 아쉬움과 동시에 그 너머의 시간을 바라봤다. 그는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2009~2010시즌)도 여기서 나왔는데, 잊을 수 없는 추억일 것”이라며 “새 시작을 앞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팬들과 더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 시간이 오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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