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대 규모의 설탕 가격 담합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J제일제당과 삼양사 전직 임원들에게 법원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두 회사 법인에도 각각 벌금 2억원이 내려졌다. 법원은 시장 질서를 훼손한 중대한 범행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이번 공동행위로 폭리를 취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류지미 판사는 23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전 CJ제일제당 식품한국총괄과 최모 전 삼양사 대표이사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임직원 9명에게도 징역형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각각 선고됐다.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법인에는 각각 벌금 2억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공정거래법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고 시장 질서를 왜곡한 범행으로 규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동행위는 법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고 시장 질서를 왜곡해 죄질이 좋지 않다”며 “기업 간 거래시장 담합이라 하더라도 최종 피해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두 회사의 과거 전력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CJ제일제당과 삼양사는 과거 밀가루 담합 사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고 자진신고자 감면을 통해 형사고발이 면제된 사실이 있음에도, 그 임직원들이 다시 범행에 이르렀다”고 질타했다.
다만 법원은 이번 담합으로 두 회사가 과도한 이익을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제 원당 가격이 공개돼 있고, 대형 실수요 업체들의 가격 협상력도 적지 않은 데다 원당 가격 추이와 환율 등 외부 변수도 함께 작용한 점을 고려하면, 공동행위를 통해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는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로 반영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총괄 등은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약 4년여 동안 설탕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설탕의 원재료인 원당 가격이 오를 때는 설탕값 인상에 이를 신속히 반영하면서, 원당 가격이 내려갈 때는 설탕값 인하 폭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제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쟁 사업자들이 가격을 자율적으로 조정해야 할 시장에서 가격 인상에는 함께 움직이고, 가격 인하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부당하게 시장 경쟁을 제한했다는 게 수사와 재판의 핵심이다.
담합 규모는 3조271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기간 설탕 가격은 2023년 10월 기준 최고 66.7%까지 인상됐고, 이후 원당 가격 하락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가격 인하 폭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설탕 가격은 담합 이전과 비교해 여전히 55.6%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를 두고 원재료 가격 변동이 소비자 가격에 비대칭적으로 반영된 전형적인 담합 구조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최근 식품 원재료 가격과 생활물가를 둘러싼 사회적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설탕은 제과·제빵은 물론 음료와 가공식품 전반에 폭넓게 쓰이는 대표 원재료인 만큼, 가격 담합의 여파가 기업 간 거래에만 그치지 않고 최종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재판부 역시 이러한 점을 언급하며 기업 간 거래시장 담합이라고 해도 최종 피해자는 소비자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일 결심공판에서 피고인들에게 각각 징역형과 벌금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이날 일부 정상 참작 사유를 인정하면서도, 장기간 이뤄진 가격 담합 자체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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