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솔직했을 뿐이다.”
영화 ‘조커’의 주인공 아서 플렉은 진실을 말하며 세상을 비판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어느 순간 타인을 향한 조롱으로 기울었다. 진실이라 여겼던 말은 왜곡된 분노로 변질됐고,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진실은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조커 개인의 광기가 아닌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의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드는 인공지능(AI)은 이제 일상과 업무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창작의 세계까지 넓혀준다. 문제는 기술이 가진 양날의 검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는 스포츠계 AI 영상은 그 어두운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비판과 풍자가 아닌 거짓에 기반을 둔 ‘순수 조롱’이 판을 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을 둘러싼 AI 합성 영상이다. 실제 장면 위에 사실이 아닌 행동과 발언을 덧씌운다. 이젠 단순 패러디 수준을 넘어섰다. 표정과 음성을 정교하게 조작해 언뜻 봐선 진위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까지 이르렀다.
교묘한 방식으로 왜곡과 조롱을 낳는다. 홍 감독이 과거 프로축구 울산 HD를 이끌 시절, 라커룸에서 의자를 걷어차며 “이게 팀이야”라고 호통쳤던 장면은 이미 유명하다. 구단의 시즌 다큐멘터리로 공개된 순간으로 팀 내부의 긴장과 감독의 리더십이 드러났다. 실제로 당시 홍 감독은 울산의 K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AI는 이 장면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바꿔놓는다. 화면 속 홍 감독은 의자를 걷어찬 직후 중심을 잃고 그대로 쓰러져 고통스러워 한다. 자막은 “무능력에 분노해 자멸”이라는 식의 설명을 덧붙인다.
피해는 특정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홍 감독을 선임할 당시, 하지도 않았던 발언들이 재구성되면서 사실인 것 마냥 온라인 공간을 떠돈다. 홍 감독이 달걀을 맞거나 그라운드에서 춤을 추는 영상은 끝없이 생산되는 중이다. 스타 선수들 역시 딥페이크로 골머리를 앓는다. 한 영상에서 대표팀 주장 손흥민(LAFC)은 스스로 경험 많은 투자자라며 특정 투자 사이트를 홍보한다. 다른 영상에선 도박으로 돈을 벌었다고 설명하며 도박 사이트를 추천한다. 모두 거짓이다.
이런 가짜 영상과 가짜 뉴스는 결합해 더 빠르고, 사실인 것처럼 확산된다. 대표팀 내 불화, 선수 보이콧, 감독 경질설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영상의 형식을 빌려 ‘속보’처럼 유통된다. 이제는 역설적으로 실제 영상임에도 ‘AI 아님’이라는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장의 반응 역시 냉담하다. 동의 없이 제작되는 영상에 선수들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이미지 소비를 넘어, 선수 개인의 커리어와 평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개별적으로 보면 가벼운 장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페이지가 한 겹씩 쌓이면 특정 인물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굳혀진다.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기 어려워지며, 가짜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투자 및 도박 광고 등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특히 이와 같은 무분별한 콘텐츠를 아이들이 접한다면 하나의 놀이로 내면화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타인을 희화화하는 방식을 죄의식 없이 학습하는 구조다.
물론 AI가 항상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선수 동의를 기반으로 제작된 콘텐츠는 팬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 김영빈이 콘텐츠를 찍기 쑥스럽다고 하자, 구단은 선수 허락 아래 AI로 댄스 영상을 제작해 SNS에 게시했다. 프로농구 KCC도 경기장 댄스 이벤트 예시로 허웅, 허훈이 춤추는 AI 영상을 이용한다. 선수의 부담을 줄이면서 친근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결국 중요한 건 활용 방식과 문화다. 스포츠계에서 AI가 웃음 소비 수단으로 전락해 순수 조롱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비판은 스포츠를 성장시키지만, 조롱은 문화를 퇴보시킨다. AI가 건강한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경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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