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처럼 오는데, 올곧게만 뻗는 직구는 아니고 슬라이더처럼 꺾이는데, 크게 휘지도 않는다. 이 까다로운 어정쩡함이야말로 컷패스트볼(커터)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날이 타자들은 진화한다. 타구를 더 멀리, 더 강하게 보내는 시대다. 프로야구 마운드에선 정타를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빠르면서도 볼 끝 움직임이 다양한 변형 패스트볼이 각광받는다. 그중 커터의 두터운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KBO리그 커터 구사율(스탯티즈)은 2023년 1.7%, 2024년 3.7%, 2025년 3.3%, 2026년 4.6%로 상승세를 보였다. ‘트렌드세터’인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경우 평균 커터 구사율(베이스볼서번트)은 2008년 4.8%에서 2026년 7.8%로 올랐다.
커터와 슬라이더의 경계가 가까워 분류상 슬라이더로 묶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실제 커터 비중은 이보다 더 높을 것이라는 현장의 시선도 적지 않다.
현역 시절 커터를 주무기로 구사했던 김선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이 구종을 기존 패스트볼 타이밍에서 미세한 변화를 줘 방망이 중심을 비껴가게 만드는 공으로 설명했다. 오른손 투수 기준 왼손 타자 몸쪽 깊숙이 파고들게 던져 배트를 빠르게 끌어내는 식이다.
경기 운영 능력이 중요한 선발 투수들에겐 커터의 역할이 크다. 효율적인 이닝 소화와 투구 수 관리에 힘이 될 수 있을 터. 이를 잘 알고 있는 국가대표 투수들의 활용 역시 눈에 띈다. 곽빈(두산), 류현진(한화), 원태인(삼성), 소형준(KT)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이름은 곽빈이다. 가장 생소한 이름이기도 하다. 커터를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지 이제 1년 차다. 왼손 타자 몸쪽으로 파고들며 정타를 줄일 카드가 절실했고, 고심 끝에 장착한 구종이 커터였다. 곽빈의 통산 좌타 상대 피안타율은 0.254로 우타 상대 0.216보다 높다. 지난해엔 좌타 상대 피안타율 0.290으로 흔들렸다.
기존 슬라이더를 봉인하는 건 아니다. 각각 쓰임새를 다르게 가져가겠다는 것. 곽빈은 “슬라이더는 헛스윙 유도나 카운트 잡는 용도로 쓰는데, 커터는 다르다. 어려운 볼카운트 싸움 도중 직구처럼 던져 범타가 나오게끔 하는 느낌”이라면서 “커터는 이제 시작 단계지만, 모든 구종을 다 결정구로 쓰고 싶다”는 목표도 덧붙였다.
물론 개막 후 쥐는 법, 즉 그립을 다시 손봤을 정도로 시행착오는 이어지고 있다. 길게는 1년을 투자해 가면서 커터를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최근엔 MLB 우완 캠 슐리틀러(뉴욕 양키스)의 커터 그립을 새롭게 참고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빅리그 2년 차 시즌을 보내고 있는 그는 커터 구종 피안타율 0.167로 빼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곧장 적응하는 모양새다. 손 감각이 좋은 것도 한몫했다. 곽빈은 “일단 손이 커서 뭐든지 다 시도해 보는 스타일인데, 내 손과 잘 맞더라”고 미소 지었다. 그립을 바꾼 지 단 이틀 만에 실전에 투입, 지난 10일 수원 원정길에 올라 KT 상대로 6이닝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새 무기는 실전에서도 곧장 존재감을 보였다. 곽빈이 던진 커터는 16일 인천서 열린 SSG전 최고 시속 154㎞까지 나왔다. 베테랑 포수 양의지의 적극 추천 아래 슬라이더 투구 한 차례도 없이 30구 넘게 커터의 비중을 크게 가져가는 등 평소와 다른 볼 배합을 택한 하루였다. 경기 중 4회 말 고명준(SSG) 상대로 잡아낸 153㎞ 삼진 장면이 큰 이목을 끌기도 했다.
곽빈은 “어떨 때는 직구보다 커터를 더 많이 던질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정재훈 투수코치님 조언에 맞춰 커터를 직구처럼 던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대한 스피드를 비슷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커터 특유의 회전, 움직임 차이가 상대 타자에게 미묘한 헷갈림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타가 넘쳐나는 그라운드 위 계산을 바꿔 나간다. 조금씩 쌓여가는 성공 사례가 다른 투수들에게도 본받을 만한 참고서가 될 수 있을 터. 올 시즌 KBO리그를 호령하는 외국인 투수들 역시 이 흐름에 힘을 싣는 중이다. 케일럽 보쉴리(KT)부터 아리엘 후라도(삼성), 앤더스 톨허스트(LG), 제레미 비슬리(롯데)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장점만 있는 구종은 아니다. 김선우 위원은 “커터는 굉장히 어려운 구종이다. 습득은 할 수 있어도 그다음부터가 문제”라며 “실투 위기도 크다. 숙련의 영역이다. 경기 내내 일관성 있게 던질 수 있는 완성도를 갖추는 게 큰 과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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