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정지훈(비)이 완벽한 악의 얼굴로 돌아왔다. 첫 악역 변신에 일각에서는 우려도 있었지만 정지훈은 선입견이 무색할 만큼 서늘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그야말로 정지훈의 재발견이다.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사냥개들’ 시즌2에서 정지훈은 글로벌 불법 복싱 리그의 운영자 임백정을 연기했다. 오직 돈만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임백정은 주인공 김건우(우도환)를 강제로 복싱 리그에 참여시키기 위해 악행을 벌인다. 이를 위해 김건우의 어머니까지 납치하는 등 자신의 목적을 위해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무력과 포스는 카메라 너머로 전달될 정도로 강렬해야 했고 정지훈은 자신의 진가를 충분히 발휘했다.
정지훈은 “너무 힘들게 촬영을 했다. 감독님이 끊임없이 주문하셨다. 클리셰적인 똑같은 악역이 아니라 시작부터 시한폭탄 같은 캐릭터면 좋겠다고 하셔서 혼자 설정도 많이 잡았고 연기하는 데 있어서 쉽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고 힘들었던 촬영 과정을 돌아봤다.
시즌1을 보고 ‘사냥개들’의 팬이 됐다는 그는 시즌2에 합류한 것을 두고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즌1을 이사하면서 봤다. 이사가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넷플릭스를 틀었는데 ‘사냥개들’이 있어서 켰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봤다. ‘잘 만들었다’ 하면서 봤는데 몇 년 뒤에 김주환 감독님과 미팅을 하게 됐고 시즌2 출연 제의를 받았다. 대본 받기도 전에 마음속으로는 오케이였다”고 밝혔다.
연기를 시작한 지 20여년이 넘었지만 이번 작품이 첫 악역이다. 그동안 악역 연기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동안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선역의 주인공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악역으로 연기 변신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팬들에게 납득이 갈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정지훈은 “도와 덕을 지키면서 살려고 굉장히 노력하는데 빌런을 할 거면 과거 캐릭터를 씻어낼 정도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제안받았던 빌런은 저의 이미지를 갉아먹는 듯한 캐릭터가 많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의 서사나 배경을 깊이 연구하는 게 통상적이지만 그는 “임백정이라는 인물은 서사가 없다”고 단언했다. 정지훈은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다.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최고여야 하고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닐 정도로 돈이면 다 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자 폭주기관차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는 게 감독님과 저의 생각이었다. 어떤 서사도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임백정에 대해 “10일 동안 굶겨놓은 미친개가 돈이라는 먹이를 향해 질질 흘리고 있는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화가 가득 차 있고다. 악당은 보통 왜 악해졌는지 서사가 있는데 감독님이 악인인데 그런 서사가 왜 필요하냐, 태생이 악했으면 한다며 설득하려 하지 말자고 했다”고 전했다.
초반만 해도 가정폭력과 학교폭력 등 임백정에 대해 나름대로 서사를 구축했었다는 정지훈은 “현장에 가면 감독님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시더라”라며 “그렇게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화가 가득하고 침을 질질 흘리는 사냥개처럼 해달라고 하셨다”며 연기에 중점을 둔 지점을 밝혔다.
치열한 액션을 선보였던 우도환, 이상이와는 환상의 호흡으로 역대급 액션 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정지훈은 “합이 정말 잘 맞았고 우도환, 이상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어느 장면이나 마찬가지지만 액션에서는 배우들 간 호흡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정지훈은 “액션은 템포, 박자가 중요하다. 우리 작품이 다른 것보다 자신 있는 건 액션이 쫀쫀하다는 것이다. 박자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자신했다.
이어 “감독님과 액션감독님이 연구를 엄청 많이 하셨다. 저희도 애드리브성으로 한 게 많고 우도환과 할 때는 실제로 복싱 경기를 하는 것처럼 했다. 저희도 ‘이거보다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건 우리밖에 못 할 것 같은데’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다. 하얗게 불태웠다”고 회상했다.
리허설 또한 셀 수 없었다. 정지훈은 “정말 토 나올 때까지 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각자 스케줄이 있으면 혼자 액션 스쿨에 나가서 연습했다. 대역이 없으니까 내가 하지 못하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보통은 주먹이 스쳐도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나면 그냥 맞은 것처럼 넘어간다. 그런데 저희는 찍고 카메라로 천천히 돌려보면서 터치가 안 됐으면 다시 찍었다”고 열정 넘쳤던 현장을 전했다.
상반신을 노출한 채 복싱 경기를 뛰는 만큼 이번에도 혹독한 몸 관리가 필수였다. 정지훈뿐 아니라 우도환, 이상이 배우 모두 액션을 연습하는 한편 몸 만들기에 열중했다. 정지훈은 “감독님은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몸이 잘 나오게 만들라고 하시더라. 밑에서 찍든 위에서 찍든 꽉 차게 만들라는 것이었는데 배우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의 성난 등근육이 말해주듯 정지훈은 데뷔 초부터 철저한 자기 관리의 대명사다. 그러나 정지훈은 “세상에 운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 어디 있겠나. 그냥 하는 거다. 저도 그만하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올해를 기점으로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벗거나 몸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한계점을 느꼈다”며 “어찌 됐건 결과물이 좋고 잘 나왔으니까 ‘그래, 정말 고생했다’라고 혼자 토닥토닥하고 있다”고 밝혔다.
죽은 줄 알았던 임백정은 쿠키 영상에서 반전을 선사하며 시즌3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정지훈은 “그 장면이 너무 흡족했고 좋았다. 마치 외국 영화 같았다. 결말이 시원했지만 마지막에 ‘이게 뭐지’ 하면서 물음표를 던지는 쿠키 영상이 개인적으로 좋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정해진 바 없지만 시즌3 출연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정지훈은 “시즌3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는데 당연히 하게 되면 끝을 볼 것”이라며 “안 한다고 하면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시즌3 출연 의향을 드러냈다.
끝으로 ‘사냥개들’ 시즌2 촬영장을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진짜 행복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감독님께 감사하고 우리 멤버들 다 너무 고생했다. 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때워야 하니까. 우도환, 이상이 포함해서 함께 액션을 해주셨던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함께 작업한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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