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인터뷰] ‘휴민트’ 류승완 감독이 말하는 흥행 그리고 책임감

“내일 죽어도 호상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제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휴민트에 쏟아 부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집념은 현장 스태프와 배우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지독하고 집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메가폰을 잡은 류 감독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이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이유는 하나다. 류 감독에게 영화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30년에 가까운 시간 도안 수많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신인 같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31일 류 감독은 “휴민트를 만들면서 ‘여한이 없다’라는 말을 체감했다. 해보고 싶은 걸 다 했다. 감정선·액션 스타일·톤과 무드까지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걸 모두 담았다. 제 취향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과정이었다”며 “어떻게 보면 유년기를 지난 느낌이다. 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듯이, 그런 걸 정리하고 싶었다. 이제는 다른 걸 할 때 더 편하게 할 수 있겠구나,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홀가분하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달 개봉한 휴민트는 누적 관객 수 2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4월1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인터뷰는 흥행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비슷한 시기 개봉해 흥행 돌풍을 일으킨 왕과 사는 남자와 장항준 감독에 대해 묻자 류 감독은 “장항준 감독이 오래 고생했는데 좋은 결과를 맺어 동료로서 진심으로 기쁘다”고 답했다. 이어 “박스오피스 수치는 데이터로 나타나는 사실이다. 덕분에 극장이 다시 북적이는 것도 기분 좋은 현상이다. 장 감독의 현장에 커피차를 보내 응원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제 현장에 두 번 보내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미소 짓는다.

 

류 감독은 베테랑(2015)으로 천만 감독 대열에 들어섰고, 752만 명이 관람한 베테랑2(2024)와 514만 명이 관람한 밀수(2023) 등을 통해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로 불렸다. 때문에 이번 휴민트의 적은 관객수는 전작들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표로 느껴질 수 있다. 이에 류 감독은 “흥행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론적인 현상이다. 지금까지 박스오피스 순위 자체를 목적으로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이 규모의 대중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다”라고 답했다.

 

휴민트는 북한과 러시아의 접경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각자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다. 조인성·박정민·박해준·신세경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각 인물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갈등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류 감독은 “블라디보스토크 인신매매 사건은 실화를 듣고 느낀 분노가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이별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소멸하는 것들, 헤어짐 뒤에 남겨진 사람의 쓸쓸함에 관심이 생기더라. 휴민트는 이별의 정서를 염두에 두고 만든 제 첫 번째 영화다”라고 언급했다.

 

국정원 블랙 요원 조과장(조인성)으로 부터 시작되는 일종의 스파이 누아르다. 때문에 스파이라는 직업이 가진 숙명, 즉 ‘이별을 전제로 관계를 맺는 삶’에 집중했다. 각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데 공을 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류 감독은 “관객이 단순히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어느새 클라이맥스에 왔나?’라고 느끼길 바랐다. 후반부 약 20분간 대사 없이 진행되는 장면들은 지금까지 제 영화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이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때마다 동료들을 믿고 밀어붙였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의 성취는 배우들에게 돌렸다. 특히 조인성과 박정민이라는 두 축이 있었기에 묵혀두었던 시나리오를 다시 꺼낼 수 있었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조과장 역할은 조인성이었기에 가능했다”며 “그가 나이를 잘 먹어가며 보여주는 품격, 우아함과 내면의 멋이 인물에 그대로 투영됐다. 박정민 역시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채워줬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 같은 배우다. 천재성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스크린 안에서 빛난 것은 두 사람의 공”이라고 했다.

 

영화 전반에 적극적으로 활용된 클로즈업 기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류 감독은 “스크린에서 배우의 얼굴이 뿜어내는 매력은 대단하다. 우리 배우들은 뒷모습만 찍어도 감정이 느껴질 만큼 태도가 훌륭했다”며 “그들의 매력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거리의 보조 출연자들을 과감히 제외하고 인물의 걸음걸이와 표정에만 집중했다”라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촬영 중 담석증으로 응급실에 갈 정도로 몸은 고됐지만, 그는 여전히 현장을 꿈꾼다. 후배들을 위해 ‘녹슨 기구에 기름칠하고 깨진 유리조각을 치우는 형’이 되고 싶다는 말에서 한국 영화를 향한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류 감독은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미련도 여한도 없다. 이제는 좀 더 심플해지고 싶다. 영화관이 선사할 본질적인 재미가 무엇인지 다시 묻고 있다”라고 다음 현장을 꿈꿨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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