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만이 움직였다…'왕사남'이 바꾼 대한민국 문화 지형도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극장가를 넘어 문화계 전반에 단종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련 관광지를 찾는 발길이 늘고 역사서 판매도 동반 상승하는 등 콘텐츠 소비가 다방면으로 확장되며 흥행 열기가 관광과 출판 시장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극장가를 넘어 문화계 전반에 단종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련 관광지를 찾는 발길이 늘고 역사서 판매도 동반 상승하는 등 콘텐츠 소비가 다방면으로 확장되며 흥행 열기가 관광과 출판 시장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

 

‘왕과 사는 남자’가 극장가를 넘어 문화계 전반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영월은 평일에도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유례없는 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고, 단종 관련 도서는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쓰는 역주행 현상까지 벌어졌다. 스크린에서 시작된 열풍이 산업 전반으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왕사남은 영화가 만들어내는 파급력의 새로운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역대 관객수 3위·매출액 1위…극장가 장기흥행

 

지난달 개봉한 ‘왕사남’은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가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떠나 촌장 엄흥도(유해진)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해진, 박지훈과 더불어 유지태·전미도·이준혁·안재홍 등이 출연해 힘을 더했다. 연출은 각종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익숙한 장항준 감독이 맡았다.

 

개봉 31일째인 지난 6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50일 만에 1500만 고지까지 넘겼다. 30일 현재 1600만명에 육박했다. ‘신과함께-죄와 벌’(2017·1441만), ‘국제시장’(2014·1425만)의 기록을 연이어 깨고 역대 개봉작 중 누적관객 3위에 올랐다. 이 추세라면 역대 흥행 2위인 ‘극한직업’(2019·1626만)도 충분히 제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개봉작 1위는 ‘명량’(2014·1761만)이다.

 

누적 매출액 기준으로는 영화 티켓값 상승 등의 영향으로 이미 1위를 차지했다. 누적 매출액은 1507억원으로 ‘명량’의 1357억원, ‘극한직업’의 1396억원 기록을 모두 넘었다. 순제작비 105억원 대비 약 14배 수익을 거둔 셈이다.

 

전례 없는 흥행 기록의 중심에는 스토리의 힘이 있다. 비극의 역사 속 인물인 단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권력 다툼보다 인간적인 관계와 감정에 초점을 맞추며 공감을 끌어냈다. 유배지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인물 간의 유대와 변화는 웃음과 여운을 동시에 안기며 세대와 취향을 넘나들었다.

 

여기에 유해진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생활밀착형 연기와 박지훈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 어우러지며 서사의 힘을 극대화했다. 장항준 감독 특유의 위트 있는 연출도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부담 없이 풀어내며 진입 장벽을 낮췄다.

 

그 결과 한 번 관람에 그치지 않고 다시 극장을 찾는 N차 관람 열풍으로 이어지며 장기 흥행을 견인하고 있다.

 

◆관광·출판업계도 ‘단종 특수’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를 찾는 방문객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사진=영월군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를 찾는 방문객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사진=영월군

 

흥행은 스크린에만 그치지 않는다. 유배지인 영월도 단종 신드롬의 직접 수혜지가 됐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촬영지를 찾는 성지순례가 이어지면서 방문객이 급증했다. 청령포로 들어가는 유일한 수단인 나룻배를 타기 위한 선착장에는 긴 줄이 늘어섰으며, 개봉 후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관광객의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가 개봉한 2월 이후 청령포와 영월 장릉을 찾은 방문객 수는 8만70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990명) 대비 10배 가까이 늘었다.

 

관광객 증가는 지역 상권 회복으로 이어졌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분석에 따르면 개봉 이후 영월군 4주간 일평균 매출액은 개봉 전보다 35.7% 증가했다. 특히 숙박과 음식점업 매출이 52.5%로 가장 크게 증가했다. 다음달 24일부터 열리는 단종 문화제에는 장 감독의 특강까지 준비돼 관광객이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서울 시내 한 서점에서 한 시민이 단종 관련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시내 한 서점에서 한 시민이 단종 관련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출판가도 ‘왕사남’ 특수다. 영화 개봉 후 한 달간 단종 키워드 도서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565.4%나 폭증했다. 단종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고전 소설 이광수의 ‘단종애사’는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80배 늘었다. 단종이 살았던 시대와 역사적 배경에 대한 관심으로도 확장됐다. 단종 관련 도서뿐 아니라 세종 문종 단종 3대의 이야기가 담긴 ‘조선왕조실록3’까지 약 800%까지 판매량이 치솟는 등 조선시대를 다룬 역사서 전반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다음달 9일 발간 예정인 ‘왕사남’ 각본집은 지난 22일 예약 판매 개시 사흘 만에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알라딘과 교보문고 온라인 서점 종합 순위에도 종합 베스트셀러 2위로 진입했다. 예판 수량만으로 증쇄를 거듭해 이미 4쇄 인쇄에 돌입한 상태로 영화의 흥행 돌풍이 출판계에서도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30일 “단종이라는 인물을 투영한 왕사남은 대중이 느끼는 연민, 측은함 등의 감정을 섞어서 영화 안에 녹여냈다. 쿠데타에 의해 희생된 인물이지만 도덕적으로는 후세에서도 지지한다는 정서가 뭉쳐지면서 영화 관람, 스크린 바깥에 사회적인 현상까지도 만들어냈다”고 ‘왕사남’ 신드롬 비결을 짚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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