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억 매출 ‘왕사남’이 쏘아올린 공, 극장은 다시 놀이터가 될 수 있을까

-영화관 넘고, 스크린 뚫고 나온 낙수효과
-제2의 왕사남은 나올 수 있을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공세와 관람료 인상 여파로 고사 위기에 처했던 극장가가 2년 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30일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지난 주말(3월 27일~29일) 사흘간 매출액 50억 8972만 30원, 누적매출액은 1507억 891만 5130원을 기록했다. 역대 박스오피스 누적 매출액 1위 기록이다. 순제작비 105억 원으로 이뤄낸 기적이다. 

 

◆‘단종 오빠’ 현상이 만든 N차 관람

 

이번 흥행의 가장 강력한 엔진은 단종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과 실관람객이 만들어낸 참여형 문화다. 아이돌 워너원 시절의 밝은 모습과 영화 속 처연한 소년왕의 눈빛이 대비를 이루며 젊은 층 사이에서 ‘단종 오빠’, ‘단종 앓이’ 열풍을 일으켰다. 이는 곧 영화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고 극장 예매로 이어졌다. 

 

MZ관객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무대인사 피켓팅에 참여하거나 직접 제작한 굿즈를 상영관에서 나누며 극장을 팬 미팅 현장이자 놀이터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팬덤의 능동적인 소비 방식과 입소문은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압도적인 N차 관람을 견인하는 동력이 됐다.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가 1500만 관객 고지를 밟았다. 25일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50일째인 이날 오후 누적 관객 수 1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2014년 '명량'(1761만 명)과 2019년 '극한직업'(1626만 명)에 이은 역대 세 번째 1500만 돌파 기록이다. 25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한 관객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뉴시스.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가 1500만 관객 고지를 밟았다. 25일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50일째인 이날 오후 누적 관객 수 1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2014년 '명량'(1761만 명)과 2019년 '극한직업'(1626만 명)에 이은 역대 세 번째 1500만 돌파 기록이다. 25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한 관객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뉴시스.

◆스크린을 뚫고 나온 낙수효과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유해진)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박지훈)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의 파괴력은 상영관 내부를 넘어 오프라인으로 뻗어 나갔다. 이른바 콘텐츠의 낙수효과다. 촬영지인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와 단종의 능인 장릉은 영화 속 감동을 직접 체험하려는 관객들의 성지순례 코스로 부상했다.

 

영월군에 따르면 영화 개봉 이후 유적지 방문객 수가 전년 대비 급증하며 인근 식당과 숙박업소 등 지역 상권이 유례없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관광, 출판(역사서 역주행), 지역 축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원소스 멀티유즈(OSMU)의 전형을 보여준 셈이다. 이는 극장 콘텐츠가 일회성 소비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강력한 문화적 인프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0일 제작사 온다웍스 임은정 대표는 “청령포에 땟목을 타러 가고, 단종에게서 왕위를 뺏은 세조의 묘 광릉 안내 홈페이지에 악플이 달린다고 하더라. 관객이 적극적으로 행동을 한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애도의 행위가 실제 벌어지니 더 와닿았고 영화를 하는 보람을 많이 느꼈다”라고 전했다.

 

◆제2의 왕과 사는 남자는 나올 수 있을까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대박이 한국 영화계의 앞날을 무조건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영화를 만드는 환경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2, 제3의 왕과 사는 남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는 정책과 협력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우선 고물가 시대에 관객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기 위한 실질적인 유인책이 절실하다. 현재 1만5000원 선에 형성된 영화 관람료는 가족 단위 관객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화 관람료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등 세제 혜택을 강화하거나,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문화 포인트 지원 사업을 영화 산업과 적극적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격 저항선을 낮추는 정책적 배려 없이는 관객의 발걸음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극장 상영 후 OTT 공개까지의 유예 기간인 홀드백(Hold-back)의 법제화는 산업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가 곧바로 안방극장에 풀리는 현재의 구조는 극장의 독점적 가치를 훼손한다. 관객에게는 ‘조금만 기다리면 집에서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 극장 생태계를 고사시키고 있다. 홀드백 기간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설정하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극장만의 고유한 위상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상생을 위한 공간적 배려도 빼놓을 수 없다. 대형 멀티플렉스 중심의 생태계에서 소외된 지역 소규모 극장과 독립 예술 영화관들의 인프라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지역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적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은 산업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일이다. 이와 함께 대작 위주의 시장에서 허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소 규모 영화들이 안정적으로 제작될 수 있도록 정부 예산 지원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일회성 지원을 넘어, 투자와 배급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창작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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