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내일이지만, 여행은 벌써 시작됐어요.”
21일 그룹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을 하루 앞둔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는 일찌감치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공연 관람을 투어의 시작, 또는 종점으로 삼은 팬들이 서울 주요 관광지로 스며들며 도심 전체가 거대한 팬덤 관광의 베이스캠프로 거듭났다. 공연 전날부터 사실상 '보랏빛 축제'가 시작된 모습이다.
지난 20일 오전 찾은 명동 일대. 이날 명동은 말 그대로 ‘BTS·아미 환영’ 분위기였다. 서울 중구는 아예 명동 일대의 전광판에 ‘BTS와 ARMY를 환영합니다’라고 띄웠다. 수많은 상점들이 보랏빛 데코레이션으로 가게를 꾸몄다.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는 외국인 관광객 상당수에게서 BTS 굿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왔다는 20대 팬 A씨는 “광화문 공연을 보려고 3일 먼저 들어왔다”며 “명동에서 쇼핑하고, 간단한 시술을 받으려 한다. 용산 하이브 본사는 이미 다녀왔다. 한남동 유명 카페에 들렀다가 성수동에 팝업들도 둘러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연만? 쇼핑·시술까지… 팬덤 소비 확장
전 세계 아미들이 BTS 컴백을 계기로 한국을 찾았지만, BTS만 소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글로벌 아미들은 K-뷰티와 K-푸드, 패션, 캐릭터 상품 등 한국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요소를 함께 즐기고 있었다. 팬들이 공연을 계기로 도시를 찾고, 소비를 이어가는 ‘팬덤 관광’이 상권을 활성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떠오르는 것.
K-뷰티 메카인 올리브영은 물론 콘택트렌즈, 패션 매장 곳곳에서 쇼핑을 즐기는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뷰티 매장 관계자는 “평소보다 외국인 매출이 크게 늘었다”며 “BTS 공연 영향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K-뷰티 플랫폼으로 떠오르는 약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국인 전용 올인원 결제 플랫폼 와우패스를 운영하는 오렌지스퀘어에 따르면 약국 결제액은 전년 대비 222% 급증했다. 기예림 명동하나약국 약사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여드름 연고”라며 “이뿐 아니라 약국 뷰티 브랜드를 찾는 수요도 굉장히 커졌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온 30대 B씨는 “BTS를 보러 왔다. 물론 온 김에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유명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통가까지 ‘보랏빛’… 명동 상권 들썩
팬덤이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인 명동의 라인프렌즈 스퀘어도 오픈런 줄로 붐볐다. 특히 건물 외관 파사드는 BTS와 함께 탄생한 글로벌 캐릭터 IP BT21로 새롭게 꾸며졌다. 이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IPX 관계자는 “BT21 ‘월드 보이지’ 신제품이 최근 출시됐고, 오늘 명동점 파사드도 새로 바뀌어서 팬분들이 많이 보러 오시는 듯하다”고 전했다.
명동의 터주대감들도 BTS 맞이를 위해 보랏빛으로 변신했다. 롯데백화점은 오는 22일까지 오후 시간대 ‘롯데타운 명동’ 일대를 보라색 조명으로 물들이는 ‘웰컴 라이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LF는 헤지스 플래그십 ‘스페이스H 서울’을 중심으로 팬 맞이에 적극 나섰다. 코오롱스포츠 역시 보라색 상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공연이 열리는 광화문 일대에서도 이같은 흐름이 이어진다. 광화문광장 인근의 동화면세점은 지난 10일부터 BTS 광화문 공연 시기에 맞춰 새단장한 1층 매장에서 BTS 관련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BTS 응원봉과 티셔츠, 수건 등 응원도구를 비롯해 포토카드, 인형, 가방, 액세서리 등 다양한 품목이 진열됐다. 구매 금액별 사은품을 제공하고 BTS 캐릭터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했다.
◆호텔도 ‘BTS 특수’… 굿즈 패키지 잘 나가네
호텔·리조트 업계도 BTS 수요를 겨냥한 연계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우선, BTS 멤버 뷔가 모델로 활동 중인 파라다이스시티는 ‘유어 파라다이스 인 더 시티’ 프로모션을 선보였다. 특히 객실 패키지에는 여권 케이스, 목욕 수건, 슬리퍼 등 ‘BTS 더 시티 아리랑 서울’ 한정 굿즈를 포함했다. 리조트 전역에 방탄소년단의 음악 세계를 반영한 체험 요소를 배치했다. 파라다이스시티 측은 패키지 문의가 급격히 늘면서 기존 준비했던 객실 규모를 2배로 확대했다고 전했다.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 역시 ‘리미티드 머치 컬렉션’을 포함한 객실 패키지를 선보이는 중이다. 호텔 측에 따르면 공연 당일인 21일 전후 객실은 이미 만실이다.
◆공연 전부터 소비 이어져… 경제 효과 폭발
이처럼 BTS 컴백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 이상의 경제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다. 공연 전부터 소비가 폭발, 팬덤 지출이 즉각적으로 도시 상권으로 흡수되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BTS 컴백 월드투어가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에 맞먹는 경제적 파급력을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21일 광화문 무료 공연 하나만으로도 약 1억7700만달러, 한화 약 2660억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BTS노믹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현상은 단순 공연 소비를 넘어 항공, 숙박, 식음료, 쇼핑, 굿즈, 콘텐츠 소비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띤다.
IBK투자증권은 BTS 컴백이 창출할 경제 규모를 약 2조9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앨범 판매 600만장, 투어 관객 600만명, 티켓 가격 30만원, 굿즈 소비 14만원 등을 반영한 수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도 2022년 BTS 국내 콘서트 1회당 생산유발효과를 최대 1조2207억원으로 분석한 바 있다. 소비창출 7422억원, 부가가치 5706억원, 고용 유발 1만815명 수준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BTS 월드투어가 확정 일정 기준으로도 최소 8억달러, 약 1조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일정이 확대될 경우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149회 공연, 약 22억달러)에 필적하는 수준까지 성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회성 관람객? 팬덤은 ‘재방문형 라이프스타일 여행자’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이 단순한 K팝 팬덤 소비를 넘어 국내 관광정책과 상품 개발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신호라고 본다. K팝 팬덤은 더이상 일회성 공연 관람객이 아니다. 이들은 아티스트와 연결된 공간과 문화를 소비하며 한국을 주기적으로 찾는 ‘재방문형 라이프스타일 여행자’로 진화하고 있다.
윤혜진 경기대학교 관광개발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팬덤 관광의 효과나 팬덤의 관광 동기, 목적, 상품 개발에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러다가 글로벌 팬덤들이 한국에 오면서 대중과 지자체, 정부도 그 파급력을 피부로 체감하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윤 교수에 따르면 팬덤의 움직임은 무척 적극적이다. 그는 “독일에서 온 20대 학생들이 BTS 공연을 보기 위해 3월 초 한국에 입국했다가, 공연 전날인 20일 학교 일정 때문에 돌아간다며 아쉬워했다”며 “공연을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관련 경험 자체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방문하는 게 팬덤 관광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이제 BTS 등 K-콘텐츠가 관광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을 체감하고 있다”며 “팬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관련된 이벤트와 장소를 찾아 소비하고, 그 경험을 통해 정체성과 애착을 형성하는 매커니즘을 이해하면 보다 정교한 관광 전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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