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국민을 위해, 베네수엘라는 싸웠다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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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민을 위해 싸웠다.”

 

미국도, 일본도 아니었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주인공은 베네수엘라였다. 18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미국과의 결승전서 3-2 1점 차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사상 첫 WBC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종전까지는 2009년 대회서 작성한 4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마무리 다니엘 팔렌시아(시카고 컵스)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뒤 글러브를 하늘 위로 던졌다. 선수단은 국기를 들고 뛰쳐나와 부둥켜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화끈한 반전드라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전문가들은 미국, 일본, 도미니카공화국을 ‘3강’으로 평가했다. 베네수엘라는 푸에르토리코 등과 함께 두 번째 그룹으로 분류됐다. 1라운드 조별리그(D조)에서부터 차근차근 발걸음을 뗐다. 이스라엘, 네덜란드, 니카라과를 차례로 격파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 아쉽게 패했지만, 잠깐의 쉼표였을 뿐이다. 8강서 일본을 꺾으며 파란을 일으킨 데 이어 준결승전에선 다크호스 이탈리아까지 꺾으며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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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객관적 전력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베네수엘라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뛰고 있는 스타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승 후보로 꼽히지 못했던 것은 여러 악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경제 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 협회 차원의 든든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오마르 로페즈 감독의 경우 연봉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것. 우승 후 기자회견장에 코치진 전원을 대동해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정치적 이슈도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미국과 첨예한 정치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습 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 구금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두 나라의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가 4강에 오르자 자신의 SNS에 “베네수엘라에 좋은 일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 덕분일까. 미국의 51번째 주, 어떤가”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날 경기를 ‘마두로 더비’라 부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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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미국을 위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미국은 주최 측 입장을 활용해 8강 대진표를 입맛대로 짰다. 미국과 일본을 토너먼트 양 끝에 배치해 결승에서 만날 수 있도록 안배했다. 미국은 직전 대회였던 2023년 결승서 일본에 무릎을 꿇었다. 흥행을 유도하는 한편, 좀 더 극적으로 정상에 오르는 시나리오를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미국은 준결승 후 하루 휴식 후 결승을 치를 수 있었던 반면, 베네수엘라는 이틀 연속 경기를 치러야 하는 일정이었다.

 

베네수엘라의 간절함은 바늘구멍을 뚫었다. 총성 없는 전쟁서 승전고를 울렸다. 선발투수로 나선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4⅓이닝 1피안타 무실점 위력투를 펼치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타선에선 윌리어 아브레우(보스턴 레드삭스·홈런), 에우헤니오 수아레스(신시내티 레즈·결승타) 등이 힘을 보탰다. 캡틴 살바도르 페레즈는 “3000만 국민을 행복하게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국민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진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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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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