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하자!”
외야수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태극마크와도 익숙하다.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한걸음에 달려 나갔다. 웃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세계의 벽 앞에 좌절하기도 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대표적이다. 당시 한국은 조별리그서 탈락했다. 마음고생이 컸다. 이정후는 “내가 보고 자란 한국 야구는 항상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나는 참사의 주역이었다”고 착잡한 심정을 털어놨다.
이번 2026 WBC에 임하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주장이라는 중책까지 맡았다. 사령탑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류지현 감독은 “이정후는 한국을 대표해 가장 앞서 있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든든한 중심축이 됐다. 중심서 선·후배를 잇는 것은 기본,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한다. 경기 전 이정후는 선수단을 모아놓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불어넣는다. 어느덧 팀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중요한 순간,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물론이다. 9일 호주전이었다. 5점차 이상 승리를 거두면서도 실점은 2점 이내로 줄여야하는, 까다로운 미션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 심리적 압박감이 큰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몸을 날렸다. 7-2로 앞선 9회 말 호주의 공격. 1사 1루서 우중간으로 날아온 릭슨 윈그로브의 안타성 타구를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냈다. 이정후는 “사실 라이트에 (시야가) 걸렸다. 앞서 수비 위치를 조정했는데 행운의 여신이 도왔다”고 말했다.
모두가 감탄한 이 호수비는 사실상 8강행 문을 여는 열쇠였다.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는 순간, 이정후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눈이 벌게지도록 울고 또 울었다. 후배들이 옆에서 놀렸을 정도. 일본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다. 한 매체는 ‘도쿄돔에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의 이치로는 대성통곡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정후는 “진짜 살면서 이렇게까지 떨렸던 적이 있었나 싶다”면서 “자칫 내가 또 참사의 주역이 될 뻔했다. 동료들의 기운이 좋았다”고 전했다.
대표팀은 11일 0시 즈음 전세기를 타고 8강 토너먼트가 열리는 미국 마이애미로 향했다. 이정후는 “이렇게 MLB 시스템을 누리게 돼 기쁘다. 동기부여가 돼 한국서 더 많은 메이저리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선수단에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하다. 이정후는 “최고의 선수들을 만나게 될 텐데, 자기 자신을 시험한다 생각하고 재밌게 했으면 한다. 중요한 대회지만, 축제지 않나. 원한다면 사인도 받고 사진도 맘껏 찍었음 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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