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몸 풀 시간도 없었는데…최고령 투수, 한국을 구원하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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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짐을 덜었어요.”

 

승리 외엔 선택지가 없었던 경기. 1회 만에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선발투수가 갑작스러운 팔꿈치 통증을 느낀 것.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교체 타이밍. 최고령 투수 노경은(SSG)이 나섰다. 2이닝 무실점을 기록, 승리로 가는 밑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한국은 9일 호주와의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4차전서 7-2, 경우의 수의 꼭 맞는 승리를 거뒀다. 바늘구멍 같아 보였던 8강행 문을 열었다. 류지현 야구대표팀 감독은 “존경스럽다”고 표현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노경은의 이름이 울려 퍼진다. 이날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는 것 자체는 계획돼 있었으나 이토록 빠른 시점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제대로 몸을 풀 시간조차 없었다. 선발투수 손주영이 마운드서 심판에게 부상 이슈를 알리는 등 최대한 시간을 벌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노경은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팔을 빨리 푸는 편이다. 김광삼 코치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나가겠다고 자청했다. 결과가 좋아 다행”이라고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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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불혹을 지났다. 노경은은 1984년 3월11일생이다. 정확히 만 42세. 누군가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지만, 노경은은 달랐다.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3년 WBC 이후 13년 만이다. 역대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대회 첫 경기인 3월5일 체코전 기준, 41세11개월22일이었다.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새 역사가 쓰인다. 노경은은 “나이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후배들이 좀 더 재밌게 경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물음표를 그렸던 것도 사실이다. 40대 투수의 대표팀 발탁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원활한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은, 한국 야구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류 감독은 “경험도 경험이지만, 실력은 기본으로 했다. 충분한 경쟁력을 보여줬기에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경은은 리그서 손꼽히는 정상급 불펜 자원이다. 2023시즌부터 3년 연속 30홀드를 챙겼다(30-38-35홀드). 2년 연속 홀드왕에 오르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아도, 알게 모르게 마음 한 편이 무거웠을 터. 노경은은 “대표팀에 뽑히게 된 이유를 증명하게 돼 기쁘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 도움이 된 것 같아 좋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마지막 태극마크일지 모르는 만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 한다. 노경은은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뛰지 않겠느냐”면서 “8강 진출을 하게 돼 다행이다. 국민들이 성원을 많이 해주셔서 보답을 하고 싶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진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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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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