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한 방, 혈을 뚫었다.
내야수 문보경(26·LG)이 화끈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데뷔전을 치르며 한국 야구대표팀의 첫 승을 선물했다.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체코와의 ‘2026 WBC’ 조별리그(C조) 1차전서 5번 및 1루수로 선발 출전해 그랜드슬램 포함 5타점을 홀로 책임지며 11-4 승리를 이끌었다. 결승타의 주인공으로 이날 경기에서 가장 빛났다.
단순한 1승이 아니다. 지긋지긋했던 첫 경기 징크스를 털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지난 세 차례 WBC서 한국이 고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불안한 출발이었다. 1차전을 허무하게 내주며 전체적인 구상이 꼬였다. 직전 대회에선 호주에게 일격을 당했다. 류 감독이 거듭 첫 경기 중요성을 강조했던 배경이다. 객관적 전력에서 체코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지만 결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문보경의 포효 속에 한국은 8강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됐다.
한국의 색깔은 단연 날카로운 공격력이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일궜다. 한층 젊어진 야수진은 대표팀에 새 활기를 불어넣었다. 문보경이 대표적이다. 정확성에 장타력까지 겸비한 타자다. ‘디펜딩챔피언’ LG가 자랑하는 4번 타자이기도 하다. 2년 연속 20홈런-100타점 이상을 작성했다. 지난 시즌 108타점(24홈런)을 기록, 토종 선수 중 가장 많은 타점을 마크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가히 놀라운 파워였다.
이번 2026 WBC에서도 중책을 맡았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안현민(KT), 셰이 위트컴(휴스턴 애스트로이) 등과 중심타선에 배치됐다. WBC는 처음이지만, 태극마크 자체는 익숙하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AG),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등에 나섰다. 언제든지 한 방을 때려낼 수 있는 만큼 해결사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류지현 감독은 “이번 대표팀은 역대 최강이라 자부한다”면서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실제로 날카로웠다. 경기 초반부터 방망이가 제대로 폭발했다. 1회 말 1사 만루 상황서 상대 선발투수 다니엘 파디삭의 4구를 공략했다.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몰린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힘을 실은 타구는 그대로 우익수 뒤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타구 속도 110.7마일(약 179㎞)을 자랑했다. 이 홈런으로 한국은 2009년 이진영, 2023년 김하성과 박건우에 이어 WBC 역대 가장 많은 그랜드슬램을 때려낸 국가가 됐다. 7회엔 우익수 앞 안타로 1타점을 더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야구 대표팀에게 WBC은 아픈 기억이 됐다. 초대 대회였던 2006년 4강, 2009년 준우승에 빛났지만 거기까지.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2013년과 2017년, 2023년까지 3회 대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쓰디쓴 현실을 마주했다. 다른 나라들이 빠른 성장을 일구는 동안 정체된 있었던 것 아니냐는 날선 비난이 쏟아졌다. 야구 강국으로서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이번엔 다르다. 첫 단추를 잘 꾄 만큼 비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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