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가 사라졌다. 쪼개고, 묶고, 버티는 마운드 야구가 필요하다. 운영의 묘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핵심이다.
최고의 결과를 위해 계산기를 수없이 두드렸다. 머릿속에는 이미 수십 개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하지만 야구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이미 시작부터 에이스 문동주(한화), 원태인(삼성)을 잃었다. 결국 승부는 벤치의 순간적인 판단에 갈린다. 류지현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의 손끝에 미국행 티켓이 달렸다.
2026 WBC는 특수한 무대다. 조별리그 한 경기 최대 투구 수는 65개, 50개를 넘기면 4일 휴식이 의무다. 여기에 7일 오후 7시 일본전, 8일 오후 12시 대만전 사이 간격은 고작 17시간. 사실상 연투에 가까운 일정이다. 순간의 판단이 내일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 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배경이다.
지난 2일 한신 타이거즈와의 평가전에서 대표팀 마운드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냈다. 선발 곽빈(두산)은 1회 시속 156㎞ 강속구로 삼자범퇴를 이끌었지만, 2회 들어 급격히 흔들리며 3실점했다. 다른 젊은 투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손주영(LG), 박영현(KT), 김택연(두산)은 볼넷을 허용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스트라이크존도 변수다.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에 익숙했던 젊은 투수들에게 ‘인간 심판’의 기준은 또 다른 시험대다. 미세한 차이에도 제구가 흔들린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일본과의 K-베이스볼 시리즈에서 평균 연령 22.1세의 한국 투수진은 이틀 동안 23개의 사사구를 내주며 무너진 바 있다.
반면 베테랑들은 달랐다. 한신전에서 노경은(SSG), 고영표(KT), 류현진(한화)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구속 대신 완성도 높은 제구와 완급 조절로 한신 타선을 차분히 봉쇄했다. 젊은 투수들의 흔들림, 베테랑들의 안정감 속 대표팀 마운드를 둘러싼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드러난 장면이다.
이번 대표팀 마운드는 에이스 한 명에게 기대는 구조보다 여러 유형의 투수들을 엮어 운용하는 ‘조합형 마운드’가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류 감독은 5일 체코전 마운드 운용에서도 ‘선발 1+1’ 전략을 택했다. 소형준(KT)이 선발로 나서 초반 흐름을 잡고, 이후 정우주(한화)가 뒤를 이어 마운드를 이어가는 구상이다.
류 감독은 “한정된 일정에서 투수를 운영해야 한다. 투구 수 제한 등도 있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이겨야 다음 경기에 전략적인 문제가 안 생길 것”이라며 “(체코전) 스코어 등 여러 상황에 따라 이후 나오는 투수들을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려사항이 많아 순간적인 수 싸움이 정말 중요할 것”이라며 “최근까지 한국 투수진들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다. 일본팀과의 평가전에선 타격이 좋았지만 WBC 무대는 또 다를 수 있다. 투수진의 분발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선발이 익숙했던 선수들도 때에 맞춰 불펜을 소화해야 한다. 감독이 순간순간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선수들도 맞춰 준비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한 번의 교체, 한 번의 결단이 흐름을 바꾼다. 준비된 카드가 가장 필요한 순간 제자리를 찾을 때 시나리오는 현실이 된다. 류 감독이 준비한 무수한 셈법 위에 타이밍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 한국의 승리가 그라운드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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