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인 멜로디의 음악, 신비롭고 매혹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물감이 퍼져나가듯 천천히 스케이트 날로 은반 위를 수놓았다. 배경 음악인 그리스 신화 속 바다 요정에 착안해 만든 곡 ‘세이렌’의 주인공 세이렌이 선원들을 유혹했던 것처럼, 매혹적인 손짓과 점프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음악이 절정으로 치닫고 마침내 그가 양팔을 들고 강렬한 눈빛을 날리며 연기를 끝맺는 순간,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 이해인(고려대)가 올 시즌 개인 최고 점수를 획득하며 활짝 웃었다.
이해인은 18일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37.61점에 예술점수(PCS) 32.46점을 합쳐 70.07점을 받으며 전체 9위에 올랐다. 올 시즌 자신의 최고점(67.06점)보다 3.01점 끌어올린 시즌 베스트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른다. 오는 20일 오전 3시에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 출격한다. ‘피겨여제’ 김연아 은퇴 이후 한국 여자 피겨 최고 성적은 2022 베이징 대회 때 유영이 세운 6위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피겨스케이팅을 배운 그는 ‘김연아 키즈’다.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 은메달, 사대륙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우뚝 섰다. 세계선수권 메달은 2013년 김연아 이후 10년만, 사대륙선수권 우승은 2009년 김연아 이후 14년 만이었다.
탄탄대로만 펼쳐질 것 같았지만 난관을 피하지 못했다.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선 한 등수 차로 밀려 탈락했다. 2024년에는 음주 및 성추행 논란이 불거졌고, 선수자격 정지 징계와 법적 공방 등 힘든 시간을 겪었다. 약 1년이라는 시간 끝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무대에 섰다.
힘들었던 시간, 최고의 연기로 풀어냈다. 더블 악셀에 이어 플라잉 카멜 스핀까지 무결점 기술을 선보였고, 가산점 구간에서 트리플 플립까지 성공시키며 고득점을 획득했다. 첫 점프 기술이었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 이은 쿼터 랜딩에서 회전수가 부족했던 것이 유일한 오점이었다. 이 부분까지 소화해 낸다면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고득점을 기대할 수 있다.
이해인은 “긴장이 많이 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며 “나 자신을 100% 믿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때 어떻게 연습했었는지 기억을 떠올리며 연기를 펼쳤다”고 전했다.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쉬웠던 점을 보완해서 빠짐없이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덜 긴장하고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
한편 이날 함께 출전한 신지아는 점프에서 실수를 범하며 TES 35.79점, PCS 30.87점, 감점 1점으로 65.66점을 획득, 14위로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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