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거리와 극장이 하나로 이어지는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한국인 뮤지컬 배우 최연실의 존재감이 또렷이 빛나고 있다. 뉴욕 필름 아카데미(NYFA)를 거쳐 현지의 유서 깊은 극장 Theater for the New City(TNC) 무대에 정식으로 입성한 그는, 섬세한 감정 연기와 당당한 소신으로 현지 연출진과 관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무대에서 약 10년간 내공을 쌓아온 그는 이제 뉴욕 오프브로드웨이를 활동 무대로 삼아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으며, 자신만의 색깔로 글로벌 무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Q1. 한국에서 약 10년간 활동한 뒤 뉴욕행을 선택했다. 안정적인 커리어를 뒤로하고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스물한 살에 뮤지컬 ‘뽀로로 탐험대’로 데뷔했을 때부터 무대를 놓을 수가 없었다. 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세대학교 사학과 학사를 마친 뒤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에서 석사 과정까지 밟으며 연기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
2021년부터는 대학로의 ‘사랑, 미완성’을 시작으로 ‘연평가’, ‘세상에 하나뿐인 이별’ 등 보석 같은 소극장 작품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며 관객들과 울고 웃었다. 2023년 ‘핑크퐁’ 뮤지컬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익숙한 환경을 넘어 배우로서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커졌다. 한국에서 쌓은 1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재능이 모이는 뉴욕에서 나만의 색깔을 증명하고 싶어 도전하게 됐다.
Q2. 치열한 뉴욕 오디션을 통과한 비결은 무엇이었나.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노래와 움직임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즉흥 연기가 관건이었다. 특히 2차 콜백 미션이 ‘이민 반대를 풍자하는 1인극’이었는데, 사흘이라는 짧은 준비 기간 동안 막막함도 컸다. 하지만 제 정체성을 오히려 무기로 삼아 정면 돌파했다. 기득권에 협력하는 이민자 캐릭터 등 이방인이기에 포착할 수 있었던 서늘한 풍자와 유머를 담아냈다. 그 독창성을 연출진이 흥미롭게 받아들여 주셨고, 결국 유일한 한국인 배우로 최종 발탁되는 기쁨을 누렸다.
Q3. 이번 작품에서 ‘한국인 이민자’를 대표하는 역할이 지닌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국가나 문화권으로 규정되지 않을 때 더 깊이 있는 ‘인간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뉴욕에서 창작 프로세스를 거치며, 아직은 각 문화권을 정확히 인지하고 수용하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체감했다.
여전히 존재하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무지나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를 발견할 때마다 목소리를 냈다. 아시아 문화를 묘사할 때 특정 동작이 왜곡되게 비칠 수 있음을 알리고, 다양성에 대한 진정한 존중의 경계를 찾아가는 과정에 일조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Q4. 뉴욕 거리 한복판에서 관객과 직접 호흡한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인가.
맨해튼 센트럴 파크부터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까지 뉴욕 전역을 돌며 공연했던 모든 순간이 꿈만 같았다. 특히 TNC의 정식 유급 배우로서 첫 출연료를 받았을 때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제 연기가 전문적인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실감이 들었다.
브루클린 선셋 파크 공연 도중 폭우가 쏟아져 장비 철수 신호가 내려졌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공연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배우들 가운데 누구도 먼저 발을 떼지 않았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며 공연을 바라보던 시민 관객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이크가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 넘버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합의된 연출도, 계획된 장면도 아니었지만 공연을 향한 순수한 마음 하나로 목소리를 높였다.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진 육성과 그 진심에 화답하듯 끝까지 남아 환호를 보내주던 뉴욕 시민들의 모습은, 예술이 장벽을 허물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시민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한국인 배우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는 점은 배우 인생에서 매우 뜻깊은 성과로 남아 있다.
Q5.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조급한 마음보다는 나만의 속도로 탄탄히 커리어를 쌓아가려 한다. 감사하게도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꾸준히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어, 이미 향후 활동 스케줄이 빈틈없이 차 있는 상태다. 5월 뮤지컬 ‘Love and Other Life Sentences’의 주역 ‘셀린’ 역을 기점으로, ‘Odyssey and the Flowers of the Sun’, ‘Cassandra’ 등 다양한 연극과 뮤지컬 프로덕션의 핵심 멤버로 참여할 예정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무대의 마법처럼,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무대를 통해 뉴욕 관객들에게 한국 배우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Q6. 마지막으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또는 뉴욕에서 배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 역시 뉴욕에서 오프-오프 브로드웨이(Off-Off Broadway)를 거쳐, 이제 막 오프 브로드웨이(Off-Broadway) 데뷔를 앞두고 성장하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거창한 조언을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10년 넘게 뮤지컬이라는 한우물을 파오며 분명히 느낀 점은 있다. 결국 이 일은 단순한 실력을 넘어, 자신만의 분명한 생각과 철학을 가진 사람만이 끈기 있게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학부 시절에는 뮤지컬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이 때로는 약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사학을 전공하며 쌓은 인문학적 소양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훨씬 넓고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단순히 무대를 동경하는 마음을 넘어, '어떤 예술이 무대 위에 더 많아져야 하는가', '어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우리 시대에 더 필요한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문학적 토대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자산이다. 후배분들 역시 무대 밖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단단한 내면을 쌓아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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