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행 트렌드의 중심이 유명 관광지에서 벗어나 ‘나만 아는 소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가족 단위 중심이던 여행 방식이 친구·개인 단위로 다양화되면서 여행지는 더 이상 소비 대상이 아니라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선택지가 됐다.
소도시 여행은 규모는 작지만 지역 고유의 분위기와 생활, 문화, 미식, 풍경을 느리게 경험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미 주요 관광지를 여러 차례 경험한 N차 여행객과 차별화된 경험을 중시하는 Z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를 직접 찾아 나서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피로감까지 겹치며 줄 서는 포토 스폿과 혼잡한 명소 대신 여유로운 소도시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모습이다.
한국관광공사는 단순한 여행지 소개를 넘어, 여행자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담은 콘텐츠 ‘요즘여행’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테마 중 하나로 ‘소도시 여행’을 공개했다.
규모는 작지만 지역 고유의 이야기와 생활의 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를 새로운 시선으로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하루, ‘남해 외갓집’
남해는 독일마을, 미국마을과 같은 이국적 정취를 자랑하는 유명 명소와 금산 보리암, 다랭이마을과 같은 향토적 문화유산이 공존하는 여행지로 유명하다. 2025년 8월 기준 인구수 3만9832명,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도시 중 유일한 군 소재지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오늘도 수많은 여행자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남해를 찾는다.
남해관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남해 외갓집’은 소도시 남해를 밀도 있게 만날 수 있는 소규모 로컬 체험 여행 콘텐츠다. 언제든지 남해에 찾아왔을 때 고향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과 푸근함 속에서 편안하게 쉬었다 가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지은 이름이다. 소박한 일상의 공간에서 현지인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그들과 소통함으로써 남해에서의 시간을 특별하게 보낼 수 있다.
남해 외갓집은 세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드로잉화가 안설별 씨가 진행하는 ‘남해 언니네 드로잉 어반스케치 체험’▲도자기공방&카페 ‘티라와 흙꿉노리’에서 진행하는 ‘티라 삼촌네 외갓집 도자기 원데이클래스’ 등이다.
◆묵호, 걸으면서 즐기는 항구 소도시 여행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묵호항 일대는 서울에서 KTX로 2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소도시 여행지다. 모든 볼거리가 걸어서 30분 거리 안에 모여 있어 차 없이도 알찬 여행이 가능하다.
동해 지역관광추진조직(DMO)이 운영하는 ‘뚜벅아, 라면 묵호 갈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자. 묵호 골목을 걷고 마지막엔 바다를 보며 라면을 끓여 먹는 투어로 개별 포토투어와 가이드 동행 단체 투어로 나뉜다.
개별 투어는 묵호 향기 디퓨저를 파는 소품숍이나 로컬 책방에서 스탬프북을 받아 시작한다. 이후 국내 최초 ‘연필뮤지엄’에서 3000여 종의 연필을 보고 4층 카페에서 묵호 일대를 조망한다.
옛 번화가 발한삼거리와 동쪽바다중앙시장, 청년몰 싱싱스를 지나면 묵호의 시그니처인 논골담길 벽화마을이 나온다. 묵호의 역사를 담은 골목을 오르면 묵호등대를 만날 수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가 탄생한 삼본아파트도 필수 코스다. 투어의 마지막은 문화팩토리 덕장에서 문어, 묵호태 보푸라기 등 해산물 토핑이 랜덤으로 제공되는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마무리한다.
◆시간이 느려지는 꼬부랑길, 슬로시티 대흥
예산군 대흥면 봉수산을 병풍 삼은 고샅길엔 땅따먹기, 고무줄놀이를 했던 어린 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 논두렁과 밭두렁을 걷다 볏단 한번 손끝으로 훑고, 고목 아래 수백 년 세월을 더듬는 곳이다.
첫 목적지는 예산 대흥 ‘의좋은 형제마을’로 설정해보자. 예산 대흥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 중부권에서는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휘영청 달 밝은 가을밤 형제간 서로 몰래 볏단을 얹어주다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인 이성만·이순 형제가 실제 살던 곳이다.
슬로시티 대흥면을 가장 잘 누리는 방법은 느린 꼬부랑길을 걷는 것이다. 방문자센터를 출발점으로 옛 이야기길, 느림길, 사랑길 등 이곳의 역사와 전통문화,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코스 옛 이야기길엔 1000년 넘은 느티나무인 ‘배 맨 나무’와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깃들고, 2코스 느림길은 예산군에서 유일하게 남은 옛 관아 건물인 대흥동헌과 달팽이 미술관, 대흥향교까지 물길 따라 숲길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다. 3코스 사랑길에서는 봉수산 자락과 어우러진 교촌리의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다와 유자향이 머무는 곳 ‘고흥스테이’
전남 고흥군이 운영하는 ‘두 지역 살아보기 주말愛 고흥愛 고흥스테이’는 다른 지역 거주자가 고흥에 체류하며 지역의 여행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체류형 프로그램이다. 총 12세대가 참여하며 숙박과 공동시설 요금 등 주거비가 지원된다. 참가자들이 3개월 동안 머무는 공간은 옛 한전사택을 리모델링해 만든 고흥읍의 주거시설로 가전제품과 가구가 완비돼 생활에 불편이 없다.
고흥스테이에서 도보 10여 분 거리에는 110년 역사의 고흥전통시장이 있다. 숯불생선구이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천천히, 깊이’ 담양 창평에서 1박 2일
공간이 바뀌면 자연스레 삶의 속도도 달라지는 법. ‘느려도 괜찮아’라는 토닥임이 필요한 날, 담양 창평 삼지내마을로 향하자. 세 개의 개울이 마을을 가로지른다고 해서 삼지내 혹은 삼지천이라 불리는 이 마을은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다.
고가와 토석담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돌과 흙을 쌓아 만든 옛 담장은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지정됐다.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고재환가옥, 고재선가옥 등 국가유산에 지정된 건축물을 비롯해 평범한 살림집, 카페나 민박을 겸한 한옥, 주인 잃은 쓸쓸한 고가 등 다채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한옥으로 지은 창평면사무소 뒤로는 이층 한옥을 품은 작은 뜰이 꾸며져 있다. 마을 안 길을 산책하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숙소나 한옥을 개조한 카페, 음식점을 이용하며 느긋하게 머무는 것, 삼지내마을을 제대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창평국밥과 창평쌀엿, 한과, 석탄주 등 내공 있는 지역 먹거리가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담양에는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죽녹원과 관방제림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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