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호텔리어로 근무하던 시절 ‘무슨 일이 있다면 컨시어지를 찾아라(Just touch the concierge)’는 말은 ‘마법의 문장’으로 통했습니다. 컨시어지를 통해 접근하면 원하는 해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죠. 컨시어지는 호텔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연결해 주는 창구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이제는 의료관광 현장에 이 문장을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내 1호 호텔 컨시어지 주종숙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특임교수가 ‘메디컬 컨시어지’로 변신했다. 그에 따르면 메디컬 컨시어지는 환자 경험 전체를 조율하는 전문가다. 주 교수는 “호텔이 서비스 산업의 최전선이었던 1992년 컨시어지의 등장은 새로웠다”며 “이제는 일상 전반으로 확산돼 다양한 분야에서 이 단어가 쓰이는 추세”라고 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컨시어지가 가장 필요한 곳은 의료 현장이라고 진단한다. 외국인 환자들은 통역을 넘어 문화와 존중, 맥락이 담긴 소통과 치료 이후 사후관리까지를 기대하며 한국을 찾고 있다. 디바이스와 AI의 발전으로 언어 장벽은 낮아졌지만 그 너머의 과정을 조율하는 고급 인력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주 교수는 “치료 전부터 귀국 이후까지를 아우르는 컨트롤 타워로서 메디컬 컨시어지가 본격적으로 활약할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주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 ‘글로벌 메디컬 컨시어지’라는 표현을 만들고 이를 체계화해 쓰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숙명여대 미래교육원에서 ‘글로벌 메디컬 컨시어지 최고전문가과정’을 개설했다. 오는 3월 2기 과정이 시작된다.
◆해외 의료관광객 117만명 시대… 소프트웨어 재정비 타이밍
의료관광 시장의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은 약 117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보건당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외국인 환자 유입 규모는 전년 대비 거의 두 배 증가했다.
의료관광은 일반 관광보다 체류 기간이 길고 1인당 소비 규모가 크다. 관광산업 내에서도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분류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도 의료관광을 고부가가치 관광산업으로 육성할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의료관광은 단순히 ‘접수 후 진료’로 끝나는 게 아니다. 다시 오고 싶은 경험이 동반돼야 입소문이 나고 재방문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이를 위한 ‘의료기술’이라는 우수한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
이제는 소프트웨어도 정비해야 한다. 단순 통역이나 행정 지원을 넘어 치료 전 과정과 사후관리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전문 인력과 교육 체계의 필요성이 함께 제기되는 이유다. 주 교수는 “의료관광의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성장’을 떠받칠 기반이 탄탄해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이미 국내에 거주 중인 외국인만 해도 260만 명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인을 어떤 언어로, 어떤 방식으로 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라고 덧붙였다.
◆진료 넘어 ‘경험’으로… 의료의 완성 만드는 한 끗
국내에 이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국내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제도’가 있다. 도입된 지 약 10년이 됐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주 교수는 “국가 자격증을 어렵게 따도 시간당 2만2000원 수준의 처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의료현장에서는 아무래도 ‘통역만 잘하면 된다’는 시각이 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인 환자가 연간 150만명에 이를 상황에서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대응이 어렵다는 게 주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제는 통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AI와 디바이스 발전으로 언어 장벽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말 속에는 문화와 존중, 맥락이 담긴다”며 “이를 이해하고 전체 과정을 조율하는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메디컬 컨시어지는 외국인 환자 유치부터 치료, 귀국 이후 사후관리까지를 아우르는 ‘컨트롤 타워’다. 특히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한 중견·중소 병원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민을 함께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둔다. 실력있는 메디컬 컨시어지가 있다면 개원가에서도 의료관광 고민을 덜고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메디컬 컨시어지 과정, 의료 현장 요구에서 출발하다
메디컬 컨시어지 최고전문가 과정이 개설된 배경 역시 의료 현장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외국인 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교육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연결고리는 숙명여대였다. 주 교수는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의 요청으로 ‘컨시어지’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당시 강의 평가가 매우 좋았고 이후 학문적 기반을 갖추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에 정착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교육 과정 설계에 나섰다. MBA 과정에서 만난 동료들과 협업하며 프로그램을 구체화했다. 주 교수는 “이 과정에 오는 분들께는 반드시 만족감을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관광은 10년 남짓한 신생 시장으로 아직 학문적으로 체계화되거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시장의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유치’보다 ‘환자 대하는 방식’이 중요
커리큘럼에서 주 교수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유치’가 아니다. 그는 환자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결국 병원의 지속성을 좌우한다고 본다.
주 교수는 “강의를 듣고 돌아갈 때 단 한 문장이라도 실제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남겨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커리큘럼에서는 성공 사례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무엇이 효과적이었는지, 무엇이 실패로 이어졌는지를 함께 공유한다. 강사들도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수업 이후에는 함께 식사하며 병원 운영의 현실적인 고민을 나눈다. 개원의들의 참여 비중도 높다. 외국인 환자 유치와 관련해 A부터 Z까지 체계적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기수제로 운영되며 동문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점도 차별점이다. 주 교수는 “기수가 생기고 동창이 생겼을 때 힘이 생긴다”며 “1기 원우들 역시 밖에서는 공유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B2B에서 B2C로… 메디컬 컨시어지 역할 더 커진다
주 교수는 메디컬 컨시어지를 새로운 직업군이라기보다 지금 가장 필요한 역할로 본다. 그동안 의료관광은 에이전트 중심의 B2B 구조로 이뤄졌다. 그러나 SNS와 플랫폼 확산으로 환자가 병원을 직접 찾는 B2C 시장이 열리고 있다. 환자들은 치료 비용 구조까지 알고 한국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환자를 전반적으로 케어할 존재가 필요해진다. 의료관광을 수행하는 의료인뿐 아니라 의료관광을 준비하는 실무자와 경영진을 위한 교육이다. 특히 컨시어지 마인드는 병원 오너가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철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무자에게는 커리어 자산이 되고 병원에는 조직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
◆K-의료 2.0 시대… ‘양적 팽창’보다 ‘질적 관리’
케이메디컬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인지도를 확보했다. 이제는 몰려오는 환자들을 어떻게 선별하고, 어떻게 관리하며, 어떻게 다시 찾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가 됐다.
주 교수는 “K-뷰티가 길을 열었고 이제 K-의료가 그 흐름을 이어갈 차례”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오늘을 준비하는 공부의 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아시아를 아우르는 글로벌 메디컬 컨시어지 연맹 구축이다. 프랑스 호텔 컨시어지들이 ‘골든 키(Golden Key)’를 매개로 전 세계 네트워크를 형성했듯 의료 현장에서도 아시아권 메디컬 컨시어지들이 상징과 기준을 공유하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주 교수는 주사기를 하나의 상징으로 삼아 각국에서 활동하는 메디컬 컨시어지들이 경험과 기준을 나누는 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함께하는 세미나를 열고, 장기적으로는 국제 연맹으로 확장하는 게 목표다.
“지금은 1기지만, 2기, 3기로 이어지다 보면 이 흐름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결국 아시아 메디컬 컨시어지의 기준을 만들어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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