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안개가 가득한 바다, 거친 파도를 가르며 나아갈 때 등대의 존재는 방향을 잃지 않게 붙잡아 주는 한 줄기 믿음이다. 등대는 하염없이 빛을 밝히며 당신에게 ‘이 길은 틀리지 않았다’것을 일깨워준다. 폭풍 속에서도 나아갈 이유를 남겨주는 존재, 끝내 육지가 가까워졌고 험난했던 항해가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주는 동반자이다. 바로 황경식(34·경희) 골프 캐디의 ‘캐디론’이다. 그는 “캐디는 골프백을 대신 메는 사람이 아니라,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선수와 함께 걷는 동반자다”고 외쳤다. 촉망받는 수영 유망주에서 이제는 필드 위 조력자이자 동반자로 변신한 그를 세계비즈앤스포츠가 만났다.
◆불굴의 의지로 시작된 인생 2막
물이 좋았다. 무작정 뛰어들었다. 5살에 수영을 시작해 초등학교 1학년부터 본격적인 엘리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무릎 십자인대를 다쳤고, 중1 때 연골까지 모두 파열됐다. 성장판 때문에 십자인대 재건술만 받았다. 포기는 없었다.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불굴의 의지로 다시 스타팅 블록 위에 섰다. 꿈을 펼쳐갔다. 2009년 전국체전에서 남고부 배영 100m와 200m, 계영 400m, 혼계영 400m를 모두 휩쓸었다. 4관왕에 올랐고, 그 해 경기도 우수 선수 시상식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당시 수상자 중에는 박지성, 김연아, 장미란이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에게 더 큰 극복의 의지를 실험했다. 또 부상이 찾아 온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무릎에 결국 탈이 났다. 당시 발목 인대가 끊어져 병원을 향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발목이 문제가 아니다. 무릎이 급하다’였다.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병원에서 더는 선수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황 캐디는 “대학 2년을 재활로 다보냈다. 수영 선수가 1년을 재활로 쉬면 사실상 선수로는 생명이 끝나는 거였다”라며 “병원에 누워있는데 자존심이 사하더라. 진짜 이 악물고 재활 운동했다. 그만둘 때 두더라도 복귀하고 그만두겠다는 의지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때 정말 열심히 운동했던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인고의 시간, 헛되지 않았다. 대학 3학년 당시 전국체전 대학부 남자 5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우승을 하고 처음 눈물을 흘린 것 같다. 대회에 출전하는 자체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금메달을 땄다는 것보다, 모두가 안된다고 했을 때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 같아 기뻤다”고 전했다.
◆방황, 그리고 인생을 바꾼 골프
황 캐디는 대학 졸업 후 실업팀에 입단해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매일 아침 아픈 무릎을 어루만지면서도 수경을 손에 쥐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믿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26세 생일,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강이 근육이 모두 파열됐고, 무릎까지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수영 선수 생활은 끝났다. 황 캐디는 “한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다. 서울 강남을 지나가는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에게 걸려 넘어졌다. 강남 길 한복판에 대자로 누웠는데, 그 순간이 너무 서럽더라. 그 자리에 누워 펑펑울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때 쌓여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같다. 한바탕 울고 났더니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며 “그 때 지나가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 같다”고 껄껄 웃었다.
할 수 있는 게 수영 밖에 없었다. 수영 강사부터 해경 훈련 강사, 카페 아르바이트까지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와의 만남,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사실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평생을 해 온 수영을 한 순간이 그만두게 됐다는 것은 쉽게 흘려버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황 캐디는 “어느 날 휴대폰으로 수영 영상을 보고 있는데, 당시 여자친구(현재의 아내)가 ‘과거에 연연하면 거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하더라”며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독일 이민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쉬운 일이 없다. 황 캐디에게는 더욱 그렀다. 이번엔 코로나19가 터졌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또 극복한다. 황 캐디는 “코로나19로 잠깐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장모님께서 ‘스크린 골프 한 번 해보지 않으래?’라고 제안해주셨다”며 “그때까지 골프의 ‘골’자도 몰랐다”고 전했다. 이어 “그때 처음 골프를 쳤는데, 사실 뭐가 재미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치면 칠수록 그 재미에 빠져들었다. 수영 이후로 이렇게 재미있는 건 처음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게 인생을 바꿀 줄 그때는 몰랐다”고 껄껄 웃었다.
◆KPGA 투어 3승의 김홍택과의 만남
‘골프 잘하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관련 영상을 살펴보다 이름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김홍택이다. 황 캐디는 “김홍택의 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이 선수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김홍택 선수의 아버지 김성근 레슨 프로님과의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며 “마음 속에서 ‘김홍택 선수를 한 번은 꼭 만나야 겠다’고 다짐했다”고 미소지었다.
프로 선수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무작정 김홍택이 연습하는 연습장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돌아온 대답은 다른 연습장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포기할 수 없었다. 황 캐디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온 마음을 다해 내 마음을 담았다. 엄청 장문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3일 동안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했다”며 “그러던 찰라, 답장이 왔다. 딱 한 문장이었다. ‘한 번 만나자’였다. 김홍택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인사 정도였다. 계속 쫓아다녔다. 그러다 김홍택의 아버지 김성근 레슨 프로님께 레슨을 받기로 했다. 매일 경기도 동탄과 포천을 오가면서 골프 연습에 매진했다. 그렇게 친분도 쌓아갔다.
2022년 우연하게 기회가 왔다. 김홍택의 당시 캐디가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김홍택이 직접 황 캐디에게 제안했다. 황 캐디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캐디를 해도 괜찮겠냐고 물었을 정도”라며 “그 때는 그냥 옆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고 껄껄 웃었다.
당시에는 대타였다. 코로나19 상황도 진정되고, 황 캐디도 독일로 돌아갔다. 그러던 중 그에게 연락이 왔다. 김홍택이었다. 그는 “독일에 있는데 처음 캐디로 나섰던 그날이 계속 생각나더라”며 “그러던 중 전속 캐디를 해달라는 김홍택의 연락이 왔다. 운명같이”라고 말했다.
제안을 받았지만, 막상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아내가 어깨를 감싸줬다. 황 캐디가 가고자 하는 길,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냈다. 그는 “아내가 믿어줬다. 너무 고마웠다”라며 “덕분에 독일 생활을 모두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웃었다. 2023년부터 그의 직업은 캐디가 됐다.
◆동반자
“처음엔 ‘캐디라면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모든 걸 공부했습니다. 잔디, 바람, 에티켓, 캐디의 태도까지. 부족하지만 ‘김홍택 프로에게 맞는 캐디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닥부터 시작했다. 현장에 가면 다른 캐디를 찾아가며 묻고, 또 물었다. 나이는 상관없었다.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도 90도로 인사하며 배우기 시작했다. 스스로 공부도 열정적으로 했다.
해외 투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묻고 또 물었다. 특히 PGA 투어 선수 출신이자 캐디로 활동 중인 알렉스(Alexandre Fuchs)와의 만남을 잊을 수 없다. 알렉스는 지난해 LIV에서 활약했던 키어런 빈센트의 캐디를 맡고 있었다. 황 캐디는 “캐디는 백을 메고 다는 사람이 아니다. 선수와 함께 걷는 동반자다. 선수와 캐디가 팀이 돼야 한다고 얘기해줬다”라며 “처음으로 ‘아, 나는 백맨이었구나’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때부터 선수의 습관을 보기 시작했다. 경기 중 물은 얼마나 마시는지,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어떤 신호가 오는지 체크했다. 선수들의 기술 차이는 사실 종이 한장이다. 결국 퍼포먼스의 차이는 멘탈에서 나온다. 캐디는 선수가 최상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장점을 십분 활용하려 한다. 황 캐디는 대학원에서 운동과 근육(허벅지 스쿼드 동작 중심으로)의 관계에 대해 논문을 썼다. 스포츠 심리학에 대한 수업도 들었다. 황 캐디는 “선수 시절과 은퇴 후에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육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관리를 해야하지는 등을 김홍택 선수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며 “나의 노력이 아주 작게라도 김홍택 선수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전했다.
◆“김홍택 캐디는 나 하나였으면 좋겠다”
오매불망 김홍택이다. 심지어 황 캐디는 김홍택을 위해 숏게임장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몇 년전 경기도 오산에 스크린골프장을 개업했고, 그 옆 빈 공터를 시공해 숏게임장을 구축했다. 김홍택은 매일 이곳을 들러 숏게임 연습을 했다.
황 캐디는 “캐디를 시작하고 아내보다 (김)홍택이를 보는 시간이 더 많다. 대회 나가면 방도 같이 쓴”고 웃으며 “골프는 필드 위의 외로운 싸움이다. 캐디가 없다면 선수 혼자 싸워야 한다.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처럼 옆에서 누군가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캐디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캐디에 대한 인식은 점차 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개회하는 제네시스 대회의 경우 캐디 전용 라운지를 설치하고, 부상도 선수와 캐디 모두에게 수여한다. 물론 여전히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대회마다 캐디가 바뀌는 선수도 많다. 황 캐디와 김홍택의 관계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선수 보조의 개념을 넘어 코치, 친구, 동반자 등 뭐든 될 수 있다.
황경식은 스스로를 아직 ‘부족한 캐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황 캐디는 “김홍택 선수가 ‘최경주 선수처럼 시니어 투어까지 계속 골프를 하고 싶다’고 꿈을 얘기하더라”며 “그 꿈을 이루는 데 옆에 서 있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이어 “김홍택이 아니라면 캐디를 하지 않았을 겁이다. 애틋함이 있다. 곁에 있으면서 이 선수가 단 하나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권영준 기자 young0708@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