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리뷰] ‘판결’, 정의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영화 판결 포스터. 제이앤씨미디어그룹·영화사빅 제공

이창희 감독의 신작 ‘판결’은 개인의 비극에서 출발해 구조적 불의로 확장되는 서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갈증을 느끼는 ‘정의’의 실체를 집요하게 묻는다. 인도네시아와의 합작이라는 제작 배경부터가 눈길을 끄는 이 영화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 현실로서의 권력과 면죄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내용은 법원 경위 라카가 임신한 아내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비극을 맞는다. 아내가 레스토랑 화장실로 향하던 중 20대 청년 디카와 부딪히는데, 그 뒤를 따라간 디카가 그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잔혹한 범죄는 단순한 충동의 결과가 아니다. 디카의 머릿속에는 이미 ‘벌받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친구가 저지른 중대한 범죄조차 집안의 권력과 고급 변호사의 전략 그리고 조현병이라는 명목 아래 무마되는 과정을 지켜본 그는 자신 역시 더 나쁜 짓을 저질러도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기괴한 자만심에 사로잡힌다. 재판은 예상대로 디카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명백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해 유죄를 인정하기에 이르지 못한다.

영화 판결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영화사빅 제공

결국 라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법정 문을 잠그고 인질극을 벌이는 것. 그러나 그의 행동은 폭력적 광기라기보다 무고한 피해자가 끝내 정의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절박한 몸부림에 가깝다. 그는 법정에 있는 누구도 해치지 않은 채 오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시간을 벌고자 한다.

 

결정적 전환점은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거를 쥔 레스토랑 종업원의 등장이다. 디카 측 변호사의 사주로 해외 도피까지 했던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증인으로 나선다. 그의 증언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권력의 성벽에 균열을 낸다. 

 

판결이 남기는 여운은 씁쓸하다. 영화는 부유층이 어떻게 법의 빈틈을 이용해 면죄부를 얻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억울한 피해와 정의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한다.

 

2026년 새해 첫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감독은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살인자ㅇ난감 등을 통해 긴장감 넘치는 서사와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여온 감독답게 판결 역시 높은 몰입도를 유지한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국적의 경계를 느끼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다. 가족과의 평범한 행복을 꿈꾸며 원칙과 규범을 믿고 살아온 라카는 관객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인물이며, 돈과 명예를 정의로 포장해 거대 권력을 수호하는 부패한 변호사 티모는 현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며 분노를 증폭시킨다.

 

판결은 통쾌한 승리를 약속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정의가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또 얼마나 어렵게 되찾아야 하는지를 끝까지 응시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과연 세상은 공정한가’ 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판결은 오는 29일 개봉한다. 

 



신정원 기자 garden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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