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만 가득했던 태극마크가 독이 든 성배로 변해간다.
야구계가 구창모(NC)의 이름 석 자로 뜨겁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차 사이판 캠프 소집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가 소속팀이 내비친 부상 우려 때문이었다고 알려지면서다.
NC 관계자는 “KBO 전력강화위원회와 사전 소통 과정에서 구창모에 대한 의견을 전달한 건 맞다. 다만, ‘차출 반대’가 아니고 현재 몸 상태와 미래를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의견을 전한 것”이라며 “구단이 파악한 선수 리스크를 투명하게 공유해 위원회의 합리적인 판단을 돕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구창모를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는 최종 선택은 결국 KBO 전력강화위의 몫이었기 때문에 NC가 차출을 거부했다는 표현에는 일정 부분 비약이 있는 건 맞다. NC 관계자 또한 “구단의 입장과 생각을 전했을 뿐, 만약 전력강화위에서 구창모를 명단에 넣었다면 당연히 그에 응해 선수를 보냈을 것”이라며 차출 거부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긋기도 했다.
찝찝한 뒷맛은 남는다. 구단에서 선수의 현재 부상이 아닌, 향후 부상 가능성을 바라보며 차출에 난색을 표했다는 점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구창모는 현재 ‘부상자’가 아니다. 숱한 부상 이력 때문에 구단이 면밀히 관리하고 있는 선수라는 표현이 오히려 맞다. 구단 관계자는 “특히 최근 당했던 척골 골절은 타 부상에 비해 추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게 트레이닝 파트 입장이다. 이 상황을 공유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유를 차치하고 NC가 보여준 국가대표 소집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는 분명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야구계 전반에 걸쳐 태극마크 무게감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 그리고 구단 사이에 대표팀 승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흩뿌릴 수 있다는 의미다. 부상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태극마크를 가슴에 짊어지는 다른 이들과의 극명한 대비는 괜한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가진다.
물론 대표팀 차출과 클럽간의 갈등은 비단 야구 종목만이 아닌 스포츠계 전체의 해묵은 이슈다. 프로배구 또한 비시즌 체력 소진은 물론, 종목 특성상 꼭 필요한 세터와의 팀워크를 올릴 시간도 부족해진다. 프로농구는 시즌 중에 대표팀 일정이 다수 포함된다. 대표팀에 차출되면 짧은 브레이크 기간에 대표팀 훈련과 실전을 소화하는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로 차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과거부터 형성됐던 게 사실이다.
다만, 농구·배구계 갈등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종목 자체의 인기도가 감소하면서 선수·구단 모두 대표팀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 그런 경향이 있던 건 맞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국제경쟁력 약화와 인기 추락이라는 현실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세부적인 지원과 협의 속에서 대표팀을 운영해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야구계가 간과해서는 안 될 포인트다. 프로야구는 2년 연속 천만 관중 돌파라는 흥행 한복판에 서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근간에는 2000년대 후반 국제대회 호성적 릴레이로 빚은 황금기가 있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이 시기를 보고 자라난 세대가 현재의 주역들이자 리그를 떠받치는 팬덤으로 성장했다.
지속가능한 인기를 위해서는 지금의 풍족함에 취해 대표팀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한 야구계 고위 관계자는 “범국민적 관심을 이어가려는 대승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작정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고의적으로 대표팀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협회·연맹 차원에서도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상의 차출 거부를 막을 확실한 프로세스와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또한 대표팀 성과에 대한 확실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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