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기온이 떨어지면 혈관이 수축하고 근육과 인대가 뻣뻣해져 반응 속도가 둔해진다. 여기에 눈비가 얼어붙은 노면까지 겹치면 가볍게 미끄러진 넘어짐이 곧바로 척추 손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특히 골밀도가 낮은 고령층에선 엉덩방아 한 번에도 척추뼈가 주저앉듯 부서지는 척추 압박골절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통증이 단순한 삭신통처럼 느껴져 초기에 놓치기 쉬운데, 적절한 시점에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면 변형과 만성 통증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척추 압박골절은 말 그대로 척추체가 위아래로 눌리며 납작해지는 골절이다. 뼈가 ‘뚝’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스펀지가 짓눌리듯 주저앉는다. 가장 흔한 배경은 골다공증으로, 작은 충격에도 견디는 힘이 떨어진다.
겨울철 빙판길 낙상, 가벼운 교통사고, 무거운 물건을 들며 허리를 과도하게 굽힌 동작 같은 일상 자극이 방아쇠가 된다. 갑작스런 요통이 대표 증상이고, 기침·재채기·자세 변화 때 통증이 치솟는다.
시간이 지나면 등이 굽고 키가 줄어드는 후만 변형으로 진행할 수 있으며, 이 단계에선 흉곽이 좁아져 숨이 차거나 소화가 더부룩한 2차 문제까지 얹힌다.
진단은 단순 X선으로 척추 높이 감소와 쐐기 변형을 먼저 확인한다. 다만 ‘언제 생긴 골절인지’ ‘신경이 눌리는지’ 같은 뉘앙스는 X선만으로 부족한 때가 많아 MRI가 결정적이다.
급성 골절 신호(부종) 여부, 후벽 손상이나 신경관 침범 소견을 MRI로 가려야 치료 전략을 안전하게 세울 수 있다. 동시에 골밀도 검사를 통해 재골절 위험과 전신 치료 필요성을 함께 평가한다.
치료는 통증 강도와 변형 정도, 발생 시점, 전신 상태를 종합해 고른다. 통증이 경미하고 변형이 크지 않은 초기엔 약물 및 주사치료, 물리치료, 단기간 보조기 착용, 활동 조절을 중심으로 보존적 치료에 나선다.
일반적으로 수 주에 걸쳐 통증이 가라앉지만, 누워만 지내다 근감소·폐렴·욕창 같은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통증 조절과 점진적 보행을 병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통증이 심해 일상 생활이 어렵거나, MRI에서 급성 골절 소견이 뚜렷하고 보존적 치료에도 호전이 더딘 경우, 골절 후벽이 비교적 보존되어 시멘트 누출 위험이 낮다고 판단되면 척추체 성형술을 고려한다.
척추체 성형술은 C-arm 영상 유도하에 국소마취로 3~5mm 내외의 통로를 만들어 압박된 척추체 내부에 특수 바늘을 넣고, 필요 시 작은 풍선으로 공간을 확보하며 낮아진 높이를 일부 복원한 뒤 뼈시멘트(PMMA)를 점성 단계에서 천천히 주입해 굳히는 방식이다.
시술은 대개 30~60분 안에 끝나고, 굳는 순간부터 미세 움직임이 차단돼 통증이 급격히 줄어드는 게 장점이다.
다만 모든 골절에 만능은 아니다. ▲골절이 오래돼 안정화가 이미 진행된 경우 ▲후벽이 심하게 파열된 경우 ▲신경학적 결손이 동반된 경우 등은 적응증을 신중히 따져야 한다.
드물게 시멘트 누출·색전 같은 합병증 가능성도 설명 후 진행해야 한다. 결국 ‘누가, 언제 받는가’가 결과를 가른다. 적절한 적응증을 갖춘 급·아급성 골절에서 시술 직후 보행 회복과 통증 완화로 일상 복귀를 앞당기는 효과가 크다. 시술 뒤에는 재골절을 막기 위한 골다공증 치료(비스포스포네이트, 데노수맙 등 약물), 비타민D·칼슘 보충, 균형·근력 재활이 필수다.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하는 신호는 분명하다. 넘어짐 이후 서 있거나 앉을 때 요통이 날카롭고, 자세를 바꿀 때 통증이 번개처럼 치솟으며, 하루 이틀이 지나도 줄지 않으면 압박골절을 의심해야 한다.
예방은 계절 습관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한다. 외출 땐 미끄럼 방지 밑창이 있는 신발을 고르고, 보폭을 줄여 발바닥 전체를 지면에 붙이듯 디디며, 손은 주머니에 넣지 말고 한 손은 반드시 비워 균형을 잡는다. 경사진 곳이나 얼음이 보이는 구간은 중심을 약간 뒤로 두고 무릎을 살짝 굽힌 자세로 통과한다. 집 안엔 욕실 미끄럼 방지 매트, 현관 젖은 구역 분리, 야간 조명 설치로 ‘실내 낙상’을 줄인다.
체력 관리도 중요하다. 종아리·발목의 반응성을 깨우는 까치발 들기 10~15회×2세트, 발목 원 그리기 20회, 엉덩관절(둔근)을 깨우는 힙힌지 연습 10회, 벽에 등 대고 가슴을 열어 흉추 신전 스트레칭 30초×3세트, 제자리 한발서기 20~30초×3세트 같은 간단한 루틴을 매일 돌리면 균형감과 보호 반응이 빨라진다. 햇빛 노출과 단백질 섭취를 늘려 근·골 건강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배장호 서울바른세상병원 원장(신경외과 전문의)은 “압박골절은 겉으로 큰 멍이나 변형이 없어 ‘쉬면 낫겠지’ 하고 넘기기 쉽다”며 “하지만 초기 한두 주의 통증 양상과 MRI 소견이 치료 방향을 정한다. 보존적 치료가 맞는 경우엔 통증을 확실히 잡고 움직임을 유지해 합병증을 막아야 하고, 시술이 필요한 경우엔 적절한 타이밍에 척추체 성형술로 통증과 기능을 신속히 회복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겨울철 허리 통증을 ‘계절 탓’으로 넘기면 뒤늦게 변형과 만성 통증이라는 대가를 치치를 수 있다”며 “넘어짐 이후의 날카로운 요통, 자세 변화 시 악화, 밤에 누우면 덜하고 일어서면 심해지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바로 영상 검사를 포함한 전문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