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탱고’가 국내 서점가에서도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 교보문고가 10월24일 발표한 10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사탄탱고’는 그 전주보다 무려 79계단 뛰어오른 주간 2위에 올랐다. 지난 십수 년 아무리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도 ‘이 정도’까지 급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바로 다음 번, 즉 아직 노벨문학상 자체에 대한 관심이 가시지 않은 시점이라 득을 보고 있단 후문.
그런데 이번 노벨문학상 발표 후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해외 문화 관련 커뮤니티들에선 오랫동안 조용히 거론돼 온 논리가 다시 증명된 수상이었단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근래 노벨문학상은 그 대표작의 영화화 버전 위력이 더해져야 수상 가능성이 높아진단 논리 말이다. 얼핏 대중문화에 경도된 주장처럼 들리지만 현황을 들여다보면 그럴싸한 구석이 있다.
일단 앞선 ‘사탄탱고’는 사실 문화 애호가들엔 영화 버전으로 더 잘 알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버전 자체가 영화사에 남을 클래식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크러스너호르커 이와 여러 영화를 협업해 온 벨라 타르 감독의 1994년 작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역대 영화 투표인 영국 사이트 앤 사운드의 역대 최고의 영화 2022년 선정에도 올랐다. ‘선셋 대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모던 타임즈’ 등 클래식들과 함께 공동 78위다. 한국서도 여러 차례 걸친 영화제 상영에 이어 지난해 DVD로 정식 출시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탄탱고’가 출간되지 않은 나라에서도 그 영화 버전은 어떤 미디어로든 공개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탄탱고’는 물론 ‘저항의 멜랑콜리’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 크러스너호르커이 작품들을 그간 국내 독점 출간해 이번 수상과 함께 화제를 모은 한 출판사 대표 역시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사탄탱고’ 영화 버전을 관람하면 서 크러스너호르커이를 처음 접하게 됐다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사례들은 근래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2012년 수상자인 중국의 모옌과 2017년에 수상한 영국의 가즈오 이시구로를 들 수 있다. 각각 대표작 ‘홍까오량 가족’ 과 ‘남아있는 나날’이 성공적으로 영화화돼 인지도 측면에서 큰 덕을 봤단 평가. ‘홍까오량 가 족’은 1988년 장예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붉은 수수밭’이란 제목으로 해외에 알려지며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 중국영화를 세계 무대 한가운데로 끌어 올렸다. 한편 ‘남아 있는 나날’은 1993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큰 인기를 누렸다.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세계에서 제작비 4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거뒀다.
한편, 2013년 수상자인 캐나다의 앨리스 먼로도 이런 효과를 얻었단 해석이 있다. 단편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 실린 ‘곰이 산을 넘어오다’가 2006년 ‘어웨이 프롬 허’로 영화화되며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과 각색상 후보로 오르는 쾌거를 거둔 덕이란 것 .그리고 이 모든 ‘노벨문학상=성공적인 영화화’ 논리가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로 거듭난 계기가 바로 2022년 수상자인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 경우다. 대표작 ‘사건’이 ‘레벤느망’이란 영화로 소화돼 하필 노벨문학상 수상 바로 전년도인 202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기 때문.
사실 이런 논리는 대략 20년 전부터도 나돌긴 했다. 특히 1988년 이후 자기 소설의 영화화를 막아오다시피 했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2004년 돌연 단편 ‘토니 타키타니’ 영화화를 허락하면서 무라카미가 노벨문학상을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처음 나왔다. 대표작 ‘양철북’이 영화화돼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한 덕에 인지도를 드높인 귄터 그라스가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영화계와 더없이 가까웠던 해럴드 핀터나 아서 밀러 등의 수상도 점쳐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무라카미는 그간 가히 편집증적으로 막아오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 영화화도 허락해 2010년 성사되고, 특히 해외 감독들에 의한 프로덕션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고 보면 2018년 한국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영화화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도 제작 계기가 특이하다. 일본 공영방송 NHK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바탕으로 국 제적 작가들이 참여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해 이 감독에 제안이 들어온 경우였단 것. 이때 NHK 측에서 일본의 3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 무라카미를 응원하려는 기획이란 얘기가 돌았다. 생각해 볼수록 양측에 모두 윈윈이 되는 기획으로서 참고해 볼 만하다.
물론 이 같은 논리도 엄밀히는 그저 흥밋거리 정도로 여기는 게 상식적이겠지만, 논리가 나오 게 된 배경 정도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앞선 크러스너호르커이 작품의 출판사 대표 사례처럼, 문학계 지식인이라 해서 문학에만 몰두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문화 콘텐츠 소비에 열중하기 마련이다. 특히 영화는 애초 문학에 기반한 서사 구조를 지 녔기에 훨씬 가깝고, 그만큼 또 다른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포크너 시절부터 영화계를 넘나드는 문인들은 수없이 존재해 왔다. 그러면서 소설보다 훨씬 대중적인 그 영화 버전을 통해 인지도와 관심도를 높이는 경우들도 발생하고, 때론 이른바 ‘잘 된 영화화’가 원작의 인상을 더욱 강하게 남기거나 심지어 끌어올리는 경우들도 비일비재하단 것.
앞선 무라카미 하루키도 2021년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화가 칸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상에서 수상하며 노벨문학상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단 얘기가 도는 걸 보면 흥밋거리 정도에서 그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영상미디어 절대 대세가 반세기 넘게 진행되는 현실이라면 한 번쯤 그 성공적 윈윈 전략을 고려해 볼 때도 됐단 얘기다. 굳이 그런 전략적 화두가 아니라도, 시인으로서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경우를 곱씹어볼 만하다. 그의 유일한 소설이었던 ‘닥터 지바고’가 사후 만들어진 1965년 작 영화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며 결국 ‘닥터 지바고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는 현실 말이다. 작가 입장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원히 기억되는 작가로 남는단 건 딱히 불리한 일은 아닐 테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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