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서해는 바다가 익어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충남 태안은 특히 맛과 풍경, 그리고 사람의 정취를 함께 품은 여행지다. 싱싱한 어패류가 계절마다 차고 넘치고, 길 하나를 돌아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소나무 숲과 노을빛 바다가 일상의 피로를 털어준다. 올가을, 미식과 자연, 그리고 서해의 낭만이 공존하는 태안의 가을로 떠나보자.
◆서해의 식탁, 태안 별미를 맛보다
가을철 태안의 매력은 먹거리에 있다. 태안의 바다는 갯벌이 넓고 플랑크톤이 풍부해 예부터 어족 자원이 풍성한 지역으로 꼽혔다. 주꾸미, 갑오징어, 꽃게, 키조개, 도다리, 우럭, 전어까지 계절마다 제철이 돌아온다. 신선한 재료에 태안식 조리법이 더해져 ‘로컬의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메뉴는 단연 ‘게국지’다. 얼갈이배추에 능쟁이(참게)를 넣어 삭힌 게국 간장으로 김치를 담가, 이를 찌개로 끓여 먹는 태안·서산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젓갈 대신 게의 깊은 감칠맛이 더해져 구수하면서도 진한 풍미가 일품이다. 게국지는 원래 겨울철 단백질 보충을 위해 만들어진 저장식품이었지만, 지금은 태안의 상징적 별미로 자리 잡았다.
태안 꽃게도 빠질 수 없다. 봄철 알이 꽉 찬 암게로 담근 꽃게장은 탱글탱글한 게살의 단맛과 간장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여기에 구수한 우럭젓국, 가을 대하구이, 뼈째 씹는 전어까지 태안의 식탁은 언제나 바다 냄새로 가득하다.
읍내와 안면도, 만리포해수욕장 등지에는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맛집이 줄지어 있어, ‘어디서 먹어도 실패 없는 도시’로 꼽힌다.
◆시장의 활기, 안면도수산시장
안면도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3분. 안면도수산시장은 태안 여행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엔 골목마다 좌판이 늘어선 5일장이었지만, 2005년 현대화 사업을 통해 2층 시장 건물로 거듭났다. 가격표시제가 의무화돼 있어 바가지 걱정 없이 신선한 수산물을 살 수 있다.
대하, 꽃게, 바지락, 우럭 등 현지 어획물이 가득하며, 회를 즉석에서 떠 먹을 수도 있다. 장터수산의 미니 꽃게튀김, 명성수산의 해물찜, 안면농수산의 주꾸미 샤부샤부 등 지역 대표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연중무휴 운영되고 주차장도 넉넉해 여행객들이 편히 들르기 좋다.
◆안면도의 숨결, 천년의 소나무숲
태안의 자연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가 안면도 자연휴양림이다. 국내 유일의 소나무 단순림으로, 수령 100년 안팎의 안면송이 430헥타르에 걸쳐 울창하게 자란다. 고려시대부터 궁궐의 기둥과 배의 재료로 쓰이던 귀한 소나무가 이곳에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휴양림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공기가 달라진다. 쭉쭉 뻗은 소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솔향이 머리를 맑게 하고, 나무 그늘 사이로 서해의 바람이 스친다. 휴양림에는 570여 점의 산림 자료를 전시한 산림전시관과 5헥타르 규모의 수목원이 자리해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숲 너머로 펼쳐지는 서해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온다.
야영이나 취사는 금지다. 이런 덕분에 소나무 본연의 생태가 온전히 보존돼 있다. 길 하나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안면도수목원도 놓치지 말자. 아산정원, 생태습지원, 지피원 등 테마정원이 조성돼 있으며, 인공적인 조경 대신 자연 그대로의 정취를 살려 정겹다.
◆해변길 5코스 ‘노을길’, 서해 낭만의 끝
태안해안국립공원을 따라 100㎞를 잇는 해변길 중에서도 단연 ‘노을길’은 백미다. 백사장항에서 출발해 삼봉해변, 기지포 해안사구, 방포 모감주나무 군락지, 그리고 꽃지해변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바다와 숲을 오가며 리아스식 해안의 굽이진 선을 따라 걷는 길이 온몸에 힐링을 선사한다.
특히 세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선 삼봉해변의 곰솔림 구간은 걷기 좋은 완만한 숲길이다. 바다의 파도 소리와 솔바람이 어우러진다. 해안사구의 모래언덕을 따라 천연기념물 군락지를 지나면, 꽃지해변의 상징 ‘할미·할아비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여전망대에 오르면 서해의 해안습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노을은 태안 여행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바다 위의 랜드마크, 영목항전망대
태안 남단, 고남면 끝자락의 영목항전망대는 최근 떠오르는 새로운 명소다. 원산안면대교와 보령 해저터널을 잇는 77번 국도가 개통되며 접근성도 크게 좋아졌다. 해당화를 형상화해 만든 전망대는 지역의 풍요와 발전을 상징한다.
높이 51.26m, 22층 규모의 통유리 전망대에서는 영목항과 장고도, 고대도, 서해의 갯벌과 섬들이 360도로 펼쳐진다. 해 질 무렵 이곳에서 보는 낙조는 ‘태안 제2의 꽃지’로 불릴 만큼 아름답다. 밤에는 조명이 켜져 야경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으며, 1층 특산품 판매장과 카페, 2층 테라스가 여행객의 쉼을 더한다.
◆청산수목원, 팜파스의 계절
가을의 태안이 품은 선물 중 하나가 청산수목원이다. 10만㎡ 부지에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물드는 이곳은 지금 ‘팜파스 시즌’으로 절정을 맞고 있다. 어른 키만큼 자란 억새가 바람결에 출렁이고, 그 사이로 분홍빛 핑크뮬리가 물든다. 팜파스축제는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청산수목원은 ‘예술 정원’으로도 불린다.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 장면을 재현한 ‘밀레의 정원’,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만든 ‘삼족오 미로공원’, 부처꽃과 황금삼나무가 늘어선 ‘황금삼나무의 길’ 등 곳곳이 포토존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과 향이 달라 사계절 언제 가도 아름답다.
수생식물원에서는 자라풀, 부레옥잠, 개구리밥, 물수세미 등이 자생하며,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그림 속 풍경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최근엔 셀프웨딩 촬영 명소로도 인기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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