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악, 그리고 연예인. 최근 열린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을 장식한 키워드다. 지난 15일 서울 모처에서 한 패션매거진이 주최하는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행사가 열렸다. 올해 20주년을 맞아 성대한 파티가 예고됐던 만큼 내로라하는 연예 종사자들이 모두 모였다. 그러나 행사 당일부터 참석자의 사진과 영상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면서 의문이 제기됐다.
화려한 드레스 코드에 붉은 조명, 클럽을 방불케 하는 음악 소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술잔을 부딪치는 연예인들의 모습까지 브랜드 오픈 행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유방암 인식 상징인 핑크리본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 등 짧은 동영상 콘텐츠가 홍보에 필수 요소가 됐다. 상황과 무관한 밈과 챌린지를 들이밀어 제작하는 경우도 다수다. 대부분의 연예인이 의미와 의도도 모른 채 주입식 영상을 촬영하고, 이는 홍보에 활용된다. 이날도 비슷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주최 측은 매 순간을 콘텐츠화 하기 위해 움직였다. 유명 연예인들이 샴페인 잔을 부딪치는 장면을 끝도 없이 연출했다. 일부 영상에는 “짠 한 번 해주세요”라는 촬영 스태프의 목소리가 담겨있기도 했다. 음주는 대표적인 유방암 위험 요인 중 하나다. 20년간 해당 행사를 개최해온 주최 측이 이러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잘못된 판단이다.
심지어 원하는 누구나 갈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연예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자선 행사는 소위 ‘급이 되는’ 연예 종사자들을 초청했다. 제안을 받았으나 일정상 참석하지 못한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주최 측에 앞서 가수 박재범이 총알받이가 됐다. 행사 축하무대에 선 박재범은 ‘몸매’를 불러 비판을 받았다. 몸매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선정적인 가사가 포함된 곡이다. 2015년에 발매돼 이미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박재범이 행사 섭외 1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이유도 이 곡 때문이다. 박재범은 평범한 행사 중 하나로 생각하고 축하무대를 준비했을 터다.
명백한 잘못은 주최 측에 있다. ‘유방암 인식 향상’이라는 목적성을 가진 행사라면 축하무대도 이에 걸맞은 가수와 선곡을 준비했어야 한다. 박재범의 무대는 그저 행사 참석자들이 술잔을 들고 즐길 법한 무대였다. 어찌 보면 박재범은 주최 측의 의도에 적합한 무대를 준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향력만 따지면 연예인도 공인이다. 이들에겐 무지도 죄가 된다. 자신이 설 무대의 취지를 고려하지 않고 선곡했다는 것, 이를 만류할 생각조차 없었던 주최 측을 향한 이유 있는 비판이다.
기부금 관련 의혹들이 피어나자 그제야 사과문이 올라왔다. 행사 관련 SNS 게시글을 모조리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총 책임자인 매거진의 편집장도 돌연 SNS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다. 하지만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20년간 모인 기부금 내역도 파묘되고 있다. 망해버린 올해 행사로 지난 날의 노력이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된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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