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회·문화적 산물… ‘반려동물’은 언제 국가사전에 등재 됐을까?

국립국어원은 2014년 10월 표준국어대사전에 ‘반려동물’을 등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9일은 제579돌 한글날이었다. 훈민정음, 곧 오늘의 한글이 창제된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국경일이다. 다른 모든 문자처럼 한글 역시 지역별 방언과 사투리가 존재한다. 이에 공식적 의사소통의 기준을 마련하고, 언어 균형과 통합 도모, 교육 및 사회적 신뢰 형성 등을 위해 표준어가 필요하다.

 

이 표준어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사전이다. 민간에서 낸 사전도 있고, 나라가 편찬한 사전도 있다. 후자가 바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이다. 국립국어원 어문연구과 담당자는 “언론, 방송, 교육계, 출판계 등에서 공식적으로 참조하는 공신력 있는 사전”으로 지칭했다.

 

언어는 향유 집단의 사회와 문화, 가치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표준어, 특히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국가 표준어’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통해 우리나라의 반려문화 발달 과정을 살펴봤다.

 

◆ ‘애완동물’뿐이었지만 이제는 ‘반려동물’도

 

1999년 초판만 해도 표준국어대사전엔 ‘애완동물’뿐이었다.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며 기르는 동물’을 가리켰다. 그때부터도 한자어 사랑 애(愛), 희롱할 완(玩)이라는 의미가 동물을 소유의 대상, 일종의 장난감으로 여기는 인식이 담긴 단어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동물단체 등에서 사람의 장난감이 아닌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짝 반(伴), 짝 려(侶)’를 활용한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주창했다. 이는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이자 동물학자인 콘라트 로렌츠(오스트리아)가 1983년 국제동물심포지엄에서 제안한 ‘Companion animal’이란 표현이 한국에 들어와 직역되면서 자리를 잡은 표현으로 보인다.

 

21세기에 접어들며 언론매체에서도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애완동물과 병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사회적으로도 국내 반려동물 양육인구가 늘어나고 반려동물 관련 문화가 선진화되면서 반려동물이라는 표현도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표준어 등록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고 비로소 ‘국가사전’에 포함됐다. 국립국어원 어문연구과 담당자에 따르면 2014년 10월 표준국어대사전에 ‘반려동물’이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이라는 의미로 등재가 됐다.

 

민중엣센스 국어사전 제6판 내 반려동물 표제어. 박재림 기자

 

그렇다고 애완동물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빠진 것은 아니지만, 반려동물이 국가 표준어가 되면서 활용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언론매체에서의 사용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2년 애완동물이라고 표현된 기사가 2083건, 반려동물이라고 표현한 기사가 1985건이었으나 2018년에는 전자가 1907건, 후자가 1만2401건으로 뒤집어졌다.

 

◆ ‘반려묘’의 탄생… ‘도둑고양이’에서 ‘길고양이’로

 

고양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는 고양이를 불길하고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따라서 반려동물로 기르는 사례도 많지 않았다.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애완동물만 있던 시절 ‘애완견’은 있어도 ‘애완묘’는 없었다.

 

2010년대부터 고양이 양육 인구가 늘어났다. 농식품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국내 반려묘 수는 약 128만 마리에서 이듬해 258만 마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면서 반려묘 관련 표현들이 집사(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을 의미하는 신조어) 사이에서 형성됐다. 그리고 2023년 10월 국립국어원은 ‘가족처럼 여기며 키우는 고양이’라는 의미로 ‘반려묘’를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했다. 이때 ‘반려견(가족처럼 여기며 키우는 개)’도 함께 등재됐다.

 

집 안에서 살아가는 반려묘가 아닌, 외부 환경에서 살아가는 고양이에 대한 인식 변화도 엿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2021년 8월 표준국어대사전에 ‘길고양이’를 추가하면서 ‘주택가 따위에서 주인 없이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라는 뜻을 달았다. 그러면서 기존에 ‘사람이 기르거나 돌보지 않는 고양이’를 가리킨 ‘도둑고양이’의 뜻풀이를 ‘몰래 음식을 훔쳐 먹는 고양이. 길고양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수정했다. 길고양이라는 중립적 시선이 새로 생기면서 도둑고양이는 비하 의미로 한정된 것. 이 또한 인식 개선을 위한 동물보호단체 및 반려인 집사들의 노력이 언어 변화를 이끈 사례로 볼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반려견’이 등재된 것은 2023년 10월로, 그 전까지는 ‘애완견’만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 반려인, 고양이 집사, 언젠가는 댕댕이도 사전에 오를까

 

신조어 향유 집단이 확장되면 표준어 등재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커지겠으나, 당장 급해 보이는 부재(不在)한 표현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그렇다. 흔히 사용되는 ‘반려인’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표제어이며, ‘보호자’는 ‘어떤 사람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뜻이 한정돼 있다. ‘견주’와 ‘묘주’ 역시 없는 단어일뿐더러 주종관계를 내포하고 있어 반려인들이 선호하는 표현은 아니다. 오히려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뜻하는 ‘집사’를 활용해 강아지 집사, 고양이 집사라는 표현을 쓰는 이들이 많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양육’ 역시 ‘아이를 보살펴서 자라게 함’이라는 뜻인데 ‘아이’가 ‘나이가 어린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에 현재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상으로는 틀린 사용이다.

 

재미있는 것은 ‘멍멍이’와 ‘야옹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됐다는 점이다. 각각 ‘어린아이의 말로, 개를 이르는 말’과 ‘어린아이의 말로, 고양이를 이르는 말’이라고 뜻풀이가 돼 있다. 멍멍이에서 유래한 ‘댕댕이’는 닮은꼴 문자를 사용해 한글 한두 음절을 대체하거나 단어를 회전, 뒤집는 식으로 사용하는 인터넷 문화에서 유래했다. 표준어는 아니지만 강아지와 어울리는 귀여운 어감 등으로 대중적으로 많이 쓰인다. 야옹이는 ‘냥이’라는 줄임말로 자주 쓰이며, 아기 고양이를 의미하는 ‘아깽이’도 고양이 집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신조어다.

 

한편 국립국어원은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일환으로 어려운 외래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다듬은 말로 제안하고 있다. 이중에도 반려동물 관련 표현이 많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이들을 가리키는 ‘펫펨족’을 ‘반려동물 돌봄족’으로, 반려동물의 실종이나 죽음으로 상실감, 슬픔, 우울감, 절망감 등을 느끼는 현상을 뜻하는 ‘펫로스 증후군’을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으로 대체하는 식이다. 그밖에 펫이코노미를 ‘반려동물 산업’으로, 페티켓을 ‘반려동물 공공 예절’로, 펫프렌들리를 ‘반려동물 친화’, 펫시터를 ‘반려동물 돌보미’, 어질리티를 ‘반려동물 장애물 경주’로 제안하고 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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